‘올 겨울은 눈이 별로 안오네’ 어제부터 마치 내 속 마음을 비웃듯이 서울 하늘은 하루 종일 눈이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요즘 마음이 편안해진 탓인지 평소 싫어하는 눈길을 왠지 눈을 맞으며 걷고 싶어졌다. 다음주에 떠날 일본 여행을 위해 은행에 들러 환전을 하고 눈을 맞으며 성수 부근을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눈이 녹은 곳을 찾아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옆으로 두툼한 검은 패딩을 입은 자전거를 탄 소녀가 휙 지나간다. (사실 소녀인지 소년인지 학생인지 성인이지는 잘 모르겠지만 씩씩한 소녀의 느낌이었다) 눈도 꽤 내리고 있고 바닥도 미끄러울텐데 거침없이 페달을 밟아 나간다.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소녀가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가다 눈 내린 바닥에 선명하게 그려진 자전거 바퀴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사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모습에 거칠 것 없이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던 소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소녀가 목적지까지 넘어지지 않고 잘 도착했길 바란다. 어쩌면 소녀도 마음 속으로는 미끄러질까 봐 두려웠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