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식으로 좋아하기

by 슈브

요즘 읽고 있는 건축가 박희찬의 <관계도시>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건축을 비롯한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면을 두루 접해볼 수 있다. 그 중 덴마크의 첫 성전환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1930년 고환 제거술을 진행한 인물로 남성이 여성으로 전환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기록, 화가로는 최초) 대니쉬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이 이야기에 매료된 나는 곧바로 OTT에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제목과 포스터는 여러 번 접했었지만 본 적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지 15분쯤 흘렀을 때 이 영화를 이미 한 번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영화를 멈추려다 남자 주인공의 멋진 수트 스타일링에 심취해 영상을 이어갔다. 그렇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남자 주인공 에디 레드메인의 매력과 스토리의 흡입력에 감탄했다. 왜 처음 봤을때는 이렇게 깊이 빠져들지 못했을까. 그 당시 내 심경과 컨디션 등 수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스토리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결과값의 차이로 이어진게 아닐까 싶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책 표지에 눈이 갔고 우연히 그 책이 평소 관심있던 코펜하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1930년대 덴마크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에이나르 베게너와 대니쉬걸에 흥미를 느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된 것이다. 단순히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까 하고 OTT 안을 떠돌다가 내린 선택이 아닌 것이다. 교보문고에 가지 않았고 박희찬의 관계도시를 읽지 않았다면 아마 대니쉬걸을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아직 보지 않은 영화라고 기억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도 낯선 음식을 먹을때도 그 사람, 그 음식을 마주하기까지 나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그 사람의 매력과 그 음식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떤 이의 인스타그램 계정, 살아온 경력, 어떤 와인 레이블의 숨은 이야기 등이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접하면서 그 매력과 맛은 극대화되고 그 만남과 식사가 끝난 후에도 깊은 잔향을 남긴다. 물론 희박하긴 하지만 잘못된 선입견이 생기는 과정일 수도 있고 실제 만남에서 되려 실망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매력적인 이야기를 지닌 대상에 흥미를 느낀다. 그 이야기와 흥미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대상의 장점과 맛은 극대화된다. 누군가가 혹은 대다수가 좋아해서가 아닌 나만이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이 더욱 특별해 진다. 가끔은 그 대상의 매력을 나만 이렇게 알아볼 수 있다는 착각 안에서 우쭐대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다. 대니쉬걸을 처음 봤을때 곧바로 박희찬의 관계도시를 읽는 과정을 겪었더라면 이 영화와 에디 레드메인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더 오랫동안 좋아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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