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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서울을 떠나보니

by 슈브

나는 청소에 목숨을 거는 편은 아니다. 다만 사용한 물건은 곧바로 제자리에 놓고 먼지가 쌓이면 털어주고 주방이나 화장실은 묵은 때가 생기기 전에 한 번씩 닦아줘야 마음이 편하다.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이천의 타운하우스는 부모님이 거주하실 계획으로 마련한 공간이었다. 몇 달 지내보시고 싫증이 나신 부모님 덕에 집은 방치되는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5년간 운영한 카페를 정리하며 이천에서 한 달 정도 푹 쉬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천살이. 며칠 간은 집 안의 묵은 때를 벗겨내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기껏 내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집을 이렇게 방치해 놓은 부모님에게 조금 화가 났다. 출퇴근이 없어진 삶이 무한정으로 게을러질까 두려워 하루의 루틴을 정해두고 첫 일주일을 보냈다. 눈이 산책, 요가, 독서, 글쓰기, 운동, 러닝 등 차분하고 알찬 하루의 반복이었다. 평온한 나날들이 좋았지만 일주일이 지나면서 부터 혼술이 늘기 시작했다. (서울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쉼인가? 나는 틀에 박힌, 주어진 삶을 피해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 테두리를 걷어내고 다양한 경험으로 채우길 바라면서 식탁 위에 삐뚤게 놓여진 핸드폰조차 그대로 두지 못하는 강박과 같은 내 모습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루틴을 지켜나가는 성취감은 자존감 형성으로 이어진다.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게 성장해 있다. 바로 내가 쉬면서 만들고자 했던 삶의 방식이다. 다만 열흘이 지나고 보니 서울로 돌아오신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예정대로 3월은 서울에서 지내야겠다. 예정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일들을 만들어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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