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가 동아일보에 재직하실 때 아버지와 함께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기억이 있다. 집에 있는 아무 운동화나 신고 나가 하기 싫은 스트레칭을 대충하고 그래도 달려야 하니까 신발끈은 야무지게 고쳐 맸었다. 배번표를 티셔츠 위에 고정시킨 후 무작정 달렸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처음으로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아마 마흔 정도 되셨을거다. 지금의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한창 치열하게 일하실 때라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시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 그 날 나와 함께 뛴 5km가 꽤나 힘드시지 않았을까 매우 뒤늦은 걱정이 든다. 그 날에 대해 아주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후후씁’ 아버지가 달리기 전에 호흡법을 알려주는 순간이다. 짧게 두 번 입으로 내쉬고 한 번 길게 코로 들이쉰다. 그 이후 대학생 때 나이키 10km 마라톤을 뛸 때도 군대에 가서 구보를 할 때도 자연스레 이 호흡법을 사용했다. 작년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씩 3-5km를 뛰기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호흡법으로 러닝 습관을 이어가고 있다. 이 호흡법이 올바른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몸에 최적화된 느낌은 든다. 무엇보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 진다. 지난주 아버지가 갑작스레 복통으로 병원에 가셨다가 담낭염 진단을 받으셨다. 가족과 주변 분들에게 심각한 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병원복을 입고 계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지긴 했다. 담낭의 염증을 빼주는 시술을 받은 아버지께 필요하신 물품과 과일을 가져다 드리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 앞 카페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지난해 파리 한 달 살기를 다녀오신 후 카페에 가면 항상 크루아상과 라떼 조합으로 주문을 하신다. 그리고 드시기 전에 크루아상을 먹기 좋게 자르면서 말씀하신다. ‘그 파리 한 달 다녀왔다고 크루아상 먹는게 습관이 되어 버렸어.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원래는 이렇게 빵을 먹는 본인의 행동을 보호하기 위한 변명스러운 말씀만 하셨었는데 오늘은 한 마디 더 덧붙이셨다. ‘추억을 먹는거지 뭐’ (멋쩍은 웃음과 함께) 그렇다. 나도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후후씁 호흡법을 고집하고 있다. 요즘은 궁금한 것들이 생기면 곧바로 퍼플렉시티 앱을 실행하는데 러닝 호흡법은 단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다. 보다 올바른 호흡법을 알게 될까봐 호흡법을 바꾸면서 아버지와의 추억도 잃을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이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한강을 배경삼아 후후씁을 반복하며 5km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