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사랑스러움
혼자 해외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손바닥 크기의 노트와
검은색 펜 한 자루를 챙긴다.
여행지에 도착하고 숙소에 짐을 푼다.
잠들기 전, 노트와 펜을 꺼내든다.
여행지의 첫 인상을 간단히 남기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MBTI는 J로 끝지만
여행의 세세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꼭 가보고 싶은 카페, 식당, 편집샵, 미술관
정도만 지도에 표시해 놓고
그 장소가 속한 동네를 어슬렁 거린다.
그러다 원래 가려던 곳보다
더 매력적인 곳들을 발견하길 좋아한다.
그런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긴다.
해가 지면 숙소로 돌아와
그냥 물인줄 알고 마트에서 집어든
탄산수를 흔들고 열었다가 옷을 다 적시거나
처음 본 현지 맥주의 독특한 맛에
인상을 쓰며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본다.
하루 종일 찍힌 사진들과
내 머릿속 기억들을 조합해
노트에 글씨를 휘갈긴다.
(피곤한 시간이라 글씨가 정성스레 써지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여행 노트를 펴보면
몇 년 전 그 여행의 감각이 온 몸에 퍼진다.
'아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를 연발한다.
오늘은 23년도에 혼자 떠났던 베를린 여행의
기록이 담긴 노트를 펼쳐보았다.
내가 남긴 기록이
그 순간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