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게 싫었다.

다음에도 한 번 더 내려주길.

by 슈브

습하고 꿉꿉한 느낌.

신발과 바지 밑단은 지저분.

귀찮게 들고 다녀야 하는 우산.


비 오는게 싫었다.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긴 가뭄을 해소하는 반가운 비 소식'이라는 뉴스 외에 비가 와서 좋은 적은 없었다.


비는 내 어릴적 즐거움도 여러 번 빼앗아 갔다.

새 옷과 김밥으로 준비한 소풍.

친구들과 알차게 계획한 첫 가평여행.

썸타던 그녀와의 첫 데이트.


그런데 이렇게 싫었던 비에게 어제 잠시 고마움을 느꼈다.

부모님과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다.

좀 걸을 겸 차도 안가져와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집과 가까운 거리라 택시도 잘 잡히지 않았다.

아빠는 버스를 타자고 했다.

30초만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거기서 버스를 타면

새롭게 이사한 우리집 앞에 바로 내릴 수 있다.

마침 아빠의 가방에 작은 우산 하나가 있었다.

먼저 엄마와 아빠가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와 나와 함께 우산을 쓰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작은 우산에 성인 남자 둘이 비좁았는지 아빠는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셨다.

순간 몸이 아주 미세하게 찌릿했다.

'아 내가 아빠랑 어깨동무를 했던게 언제였더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의 어깨동무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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