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없애기의 달인

달인이 다 좋은 건 아니다.

by 슈브

우리가 살아가는데 '자존감'이라는 녀석은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잘생기고 매너도 좋은 지철이는 나같이 평범한 여자는 안 좋아하겠지..'

'좋은 대학를 못 나왔으니 내가 꿈꾸는 성공한 삶은 그저 마음 속에 묻어 두어야 겠지..'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 나는 앞으로도 잘 안되겠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그 놈의 자존감이 바닥이라면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어려워 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토록 중요한 자존감을 자주, 쉽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없애기를 좋아한다.

크고 작은 실패의 경험, 본인만이 크게 느끼는 콤플렉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들은 스스로 자존감을 증발시킨다.



"나는 얼굴도 못났는데 여자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해.. 이딴 놈이 연애는 무슨.."

상수는 마음에 들었던 여성들에게 수 차례 데이트를 거절 당하면서 더 이상 연애 아니 연애를 하기 위한 시도를 포기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성형을 해서 이 세상 여자들 다 꼬시고 차버리겠단다.


"지금 하는 카페가 세 번째 사업인데.. 이 카페도 1년째 매출이 안오르네.. 난 왜 다 안되냐..'

정오는 26살 젊은 나이에 푸드트럭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몸은 좀 힘들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다가올 성공에 대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적자가 지속됐고 함께 일하던 친구와의 사이도 멀어졌다. 푸드트럭을 정리하고 옷 장사도 해봤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1년 전, 연남동에 작은 카페를 하나 오픈했다. 감성적인 인테리어 덕분인지 초기에는 손님이 좀 몰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도 매출도 점점 줄어 들었다. 요즘 정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혼자 소주를 들이키는 취미가 생겼다.


"고등학생들도 저렇게 꿈을 찾아 멋지게 살아가는데 나는 뭐하는 거지.."

명호는 요즘 고등래퍼2에 빠져 있다. 하트시그널 시즌2를 본방 사수하는 누나 때문에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폰으로 챙겨 보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멋지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20대 후반이 되어 버린 본인의 처지를 떠올린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취직은 잘 안되는 답답한 현실. 나는 고등학교 때 뭐했나 하는 자책만 반복하게 된다.



우리들은 스스로의 자존감을 열심히 무너뜨리는 동시에 우리들과 가장 가까운 이들의 자존감도 자주, 쉽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없애기를 좋아한다. 주로 비교의 방식을 취하며 그 가까운 대상은 바로 '가족'이다.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진짜.."

상수가 중학생 때 아버지로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다. 시험을 망쳤을 때, 다른 학교 애들이랑 싸우고 왔을 때, 집 옆 공원에서 몰래 담배피다 걸렸을 때.. 상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스스로에 대한 증오도 점점 커져만 갔다.


"으휴.. 남의 집 딸들은 시집 잘도 가던데!"

정오의 언니는 올해 35살이 되었다. 언니는 최근에 6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정오의 어머니는 올해는 시집을 갈 줄 알았던 언니의 이별 소식에 깊은 한숨과 함께 같은 말만 되풀이 하셨다. 언니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용기도 남자친구를 잊을 자신도 없다. 어머니 말마따나 나이도 많고 뛰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야속하지만 어머니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아서 하루하루 더 우울해질 뿐이다.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명호네 아버지는 올해 정년퇴직을 하셨다. 집에 계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취준생인 명호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밥 안먹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명호는 항상 "아 안 먹어요."라고 퉁명스레 대답한다. 그러면 또 아버지는 "아이씨"라고 성질을 부리신다. 그 소리에 명호는 거실로 뛰쳐나와 큰 소리를 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와 잘 지내고 싶은데 왜 막상 마주하게 되면 차갑고 무뚝뚝한 아들의 모습만 나오는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둘의 사이는 조금씩 멀어졌다. 아버지는 '내가 늙고 힘도 없어지고 돈도 안 벌어 오니까 자식도 나를 무시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존감'이라는 녀석은 우리들 자신과 가족들에 의해 가장 크게 좌지우지된다. 직접적으로 자존감을 없애 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타인, 특정 사건 등 외부 영향에 의해 위축된 자존감을 끌어 올릴 수도 있다.


자신의 약점, 단점만을 탓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비하하는 것.

남에게는 못할 말과 행동을 자신과 가장 가깝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만 너무나 쉽게 툭툭 내뱉으며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자기 자신과 가족들이 스스로 그리고 서로의 '자존감'을 지켜주지 않으면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자존감을 지켜낼 수 없다. 진정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사랑한다면 현재 자신이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자존감 없애기의 달인'이 아닌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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