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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Mar 11. 2020

크라우드 펀딩으로 열린 책쓰기

텀블벅 이용 후기

창작자가 됐다. 텀블벅에서 붙여준 호칭이다. 텀블벅은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이다. 누적 후원자수가 60만명에 달한다. 창작자들이 대중의 후원을 받아 신규 작품을 제작,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각종 디자인, 공예, 출판 등이 주요 창작 분야다. 텀블벅에서 이런 펀딩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는 사람을 창작자라고 부른다. 브런치에 작가가 있다면 텀블벅에는 창작자가 있는 셈이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영화 제작사가 투자자를 모아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다수의 개인, 군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이다. 후원, 기부, 대출, 투자 등 목적도 여러 가지다. 주로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펀딩이 이루어진다. 펀딩을 받는 주체도 기업이나 단체부터, 개인 창작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펀딩은 창작 활동에 날개를 달아준다. 우선 프로젝트의 존폐를 좌우할 최소한의 판로를 확보준다. 작가가 창작 활동에만 매진할 수 있게 한다. 금적적인 이익을 떠나 작가의 창작 세계를 이해하고, 함께 해줄 후원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작가만 보고 사준다는 것은 진성 고객, 고정 독자층이 생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꿈같은 일이다.


인생 프로젝트를 위해 펀딩을 시작했다. 첫 책 '대기업, 공공기관 20년 퇴사준비생의 홀로서기- 나 대로' 개정판을 내기 위해서다. 한 달도 안 된 책인데 벌써 개정판을 쓴다. 사실 이 책을 자가 출판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단계였다. 허접하든 말든 손에 잡히는 책이 있어 도움이 됐다. 프로젝트를 개설하고 홍보하기 더 수월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독자를 향한 열린 책쓰기다. 후원 독자층의 피드백과 격려를 받으며 함께 쓰는 책이다. 장르도 자전적 에세이에서 다른 사람도 참고 가능한 실용 안내서로 바꾼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디자인, 편집, 유통 등의 기본 요건을 제대로 갖춘 책으로 업그레이드 한다. 개정판 독자는 펀딩 목표인 300명이 될지, 일반 출판까지 이어져 1000명, 2000명, 아니면 그 이상, 이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혼자만의 고함이 아니라 이산 저산 울리는 메아리 같은 책을 쓰는 것이다.




기존 책은 출판사에 투고를 하면서도 내심 걸렸다. 고정 독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SNS의 팔로워, 이웃 수 같은 것이다. 셀링 파워가 약했다. 책을 팔아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 초보 작가의 원고를 선뜻 채택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반면 기존 유명인이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구독자가 많으면 책 쓰기도 유리하다. 책을 써본 적 없어도 출판사에서 먼저 접근하기도 한다고 한다.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필력만큼 얼마나 자체 구매층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한 것이다. 출판 펀딩에 성공하면 이런 약점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출판할 책을 구매해줄 독자를 미리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립 출판은 물론 기획 출판을 하더라도 출판사의 판매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그래서 출판 펀딩 프로젝트는 작가 개인보다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 작가가 자체 펀딩 하는 경우는 출판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협력할 수 있다. 출판사의 간택(?)만 바라고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 물론 펀딩이 성공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냉정한 현실은 텀블벅에서도 느껴졌다. 프로젝트를 개설한 지 몇 시간 만에 다른 프로젝트가 쑥쑥 올라왔다. 진행 중인 전체 프로젝트만 해도 500개에 달하고, 출판은 100개가 훌쩍 넘었다. 수많은 신규 프로젝트에 밀려 자기 프로젝트는 언제 첫 화면에서 사라질지 몰랐다. 후원자 펀딩 진행률도 여전히 제자리였다. 여기도 어쩌면 마찬가지다. 자가 출판 때도 그랬다. 상품을 만든다고 그 사이트에서 그냥 팔리는 것이 아니었다. 다 자기가 발로 뛰어 직접 팔아야 했다. 텀블벅 프로젝트 홍보도 핸드북에 친절히 설명되어 있었다. 누가 관심을 가져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SNS 등에 자체적으로 적극 홍보하라는 것이다. 펀딩 성공을 위한 홍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아래와 같은 예시 문구도 덧붙였다.


"텀블벅이라는 사이트에 가면 제 프로젝트에 일정 금액을 후원하고, 받아보실 선물을 고르실 수가 있습니다. 이 링크로 가셔서 이곳을 클릭해 회원 가입을 하시고, 원하는 선물과 금액을 정하신 다음, 신용카드나 은행계좌 정보를 넣어서 후원을 하시면 됩니다. 결제는 바로 되는 것이 아니고, 몇 월 며칠까지 얼마가 모여야만 결제가 될 겁니다..."


결국 이런 메시지를 주변, 지인부터 퍼뜨려서 입소문을 확산시켜 나가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펀딩 성공의 비결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텀블벅 홍보가 스토리 중심이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특별한 사연을 꺼내 홍보할 수 있게끔 부각해주는 구조다. 현란한 기교나 가성비 같은 것이라면 초보 작가가 못 따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창작자의 진심과 열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후원자들의 공감과 지원을 끌어낼 수 있다면, 분명 텀블벅은 새로운 가치를 확산하는 체인지 메이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밀어주세요.
 

이 말을 과연 주변 지인들에게 잘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신세 지기 싫어하는 독립적, 내향적 성격의 경우 특히 그렇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한다면 마음을 굳게 먹어보자. 먼저 손 내밀고, 그 손 잡아줄 사람이 기꺼이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가까운 사람부터 인생 콘텐츠를 나누는 진실의 동반자로 함께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인정 못 받는 메시지가 과연 어떤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까. 여태껏 괜한 부담에 정작 가까운 곳은 두고, 아무도 없는 먼 곳에 소리쳐왔던 것은 아닐까. 대답 없는 적막한 메아리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먼저 손 내밀어주는 장미빛 기대를 키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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