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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Mar 23. 2020

계약의 기술, 협상 필패의 이유는

1인 기업형 인간의 실행법_계약과 협상

"재계약 날이다. 어느 듯 시간은 흘러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장사를 접을지, 한번 더 해볼지 결단해야 한다.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 계약은 봐주지 않는다. 계약서에 찍힌 월세는 매달 어김없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통장이 비면 다른 곳에서라도 채워 막기 급급하다. 코로나 19로 수입이 전무해도 마찬가지다. 착한 임대인은 모두가 만날 수 있는 복이 아니다. 임대료 50% 감면 등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지만, 아름다운 뉴스 속에나 나올만한 이야기로 들린다. 이럴 때 계약 기간은 천근만근 벗어나기 힘든 족쇄처럼 무겁게만 느껴진다."


코로나 19로 자영업자들이 나가떨어진다. 장사가 잘되던 업체도 휴, 폐업이 속출한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바쁘다. 이럴 때 재계약이라니.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다 털어버릴지, 해결책을 한번 더 찾아볼지, 이참에 임대료라도 한 푼 더 깎을지, 계산이 분주했다. 계약 기간 마지막 날 드디어 임대인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요즘 상황이 너무 어려우니, 임대료를 깎아주세요." 그러고 다음 주 재협상 테이블로 나갔다. 조건을 맞춰 가급적 한번 더 해볼 생각이었다. 1번, 2번, 3번 옵션으로 협상 조건도 잔뜩 정리해 갔다. 결과는 대패. 고작 몇 십만 원을 3개월 동안 할인받고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원하던 계약 조건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직장에서 독립하는 순간 계약과 협상이 더욱 중요해진다. 계약이야말로 독립적이면서도 협력적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관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계약만 잘하면 충분히 서로 존중하며 이득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상대방에 맞춰주면서도 자신을 살릴 수 있다. 계약에 종속되지만 계약의 범위 내에서는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직장에서 주로 하던 계약은 '말로만 연봉 협상'이었다. 매년 정해진 계약서 사인하는 것이 일이었다. 달라지는 것은 고작해야 공무원 연봉 인상률에 물가 인상률 정도를 더하는 것이었다. 조금 더 큰 변화라면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서 전년도 고가를 인상률에 반영하는 문제였다. 매년 연봉 재계약 시즌이 되면 얼마 안 되는 이 인상률 때문에 온 직원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곤 했다.


직장인 때는 스스로 협상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계약 시 몇 개 업체에서 비교 견적만 받아보면 됐다. 계약 조건과 품질, 업체 수행능력 정도만 따져보면 대개 답이 나왔다. 가격 조정도 보통 정해진 선이 있어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총무부서 관리자로 있을 때는 계약서 검토하고 직인 찍는 것이 일이었다. 회사 도장을 꼭 꼭 찍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 코칭 등 자기계발 과정에도 관심이 많아 어느 정도 대인 관계나 협상 기술은 익숙한 편이었다. 통역자로 활동할 때는 시장단이나 VIP 외교사절단 협상 테이블 중심에도 수없이 앉아봤다. 무엇보다 협상에 있어 먼저 상대방과 신뢰를 형성하고, 요구사항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말뿐 아니라 몸짓, 표정, 목소리 톤 등으로 종합적인 단서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또 자신의 협상 마지노선을 지키고, 다양한 옵션 등으로 상대방 흔들어 놓을 수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실행 관련 세부사항과 자잘한 조건 정도만 맞추면 협상은 대개 무난하게 끝났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보통 여러 단계의 결재와 보고를 거치며 책임을 분산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회사라는 배경을 엎고 조금 더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독립하면서 계약 협상 시 어려움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작은 1인 기업이라도 직장인과 다른 점은 계약의 최종 결정권자가 '나'라는 것이다.


임대차 재계약 시 원래 구상했던 협상 전략은 이랬다.

옵션 1. 계약금 월세 중 3-4개월 50%, 적어도 30%는 깎기. (착한 임대인 운동 등 할인율 반영)

옵션 2. 30% 이하로 깎아주면 월세에서도 10만원은 뺀다.

옵션 3. 옵션 1-2가 안되면, 매월 월세에서 20-30만원은 깎는다.

마지노선.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계약 기간을 1년 이내로 줄여, 언제든지 영업을 접고 나올 수 있도록 훗날을 기약한다.


이 삭감률은 코로나 19로 워낙 어려워진 경제 상황도 반영했지만, 나름 상권 데이터도 참고한 것이다. 지난 1년 해당 지역 소규모 상가 임대료 하락률이 10% 정도였던 것이다. 이렇게 임대료 하락률이나 주변 상가 공실률, 매출 감소액, 등기부 변동내역 등을 고려해 전략을 짰다. 이전에 누적된 적자와 최근 1명의 손님도 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임대인은 바위처럼 꿈쩍도 않았다. 옵션 1에서 마지노선까지 하나도 반영하지 못했다. 역시 임대인이었다. 협상 실패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임대인일 때도 똑같았다. 경매로 인수한 주택 임차인과 재계약할 때였다. 임차인은 보증금을 거의 다 돌려받는 배당자였지만, 일부 손실액을 이유로 보증금의 1/3을 깎아달라 했다. 월세도 이전 임대인의 관리비 부담 조건을 들며 일부 감면을 요구했다. 여러 가지 이유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조건을 수용했다. 나중에 부동산 중개인도 계약 조건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역시 임차인이었다.


임대인한테도 임차인한테도 협상 열세를 겪으면서 깨달았다. 협상은 머리나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나 신분 하고도 상관없었다. 전자 임대인은 근 20년 넘게 소기업 사장을 맡아온 노련한 건물주였지만, 후자 임차인은 시험을 준비하는 한참 앳되어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협상 과정을 복기해 보니 두 사람에게 3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협상을 쉽게 생각했던 내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절묘한 실전 기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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