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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an 08. 2022

꿈과 비전, 실행 로드맵의 실제

다시 쓰는 40일 퇴사학교_비전(2)

이 글은 퇴사 3주년을 맞아 이전 글을 돌아보고, 수정 또는 편집해 재발행한 것입니다.


© cc0photo, 출처 flickr

처음에는 아무런 꿈이 없었다. 단지 돈을 많이 벌겠다는 단순한 목표가 있었을 뿐이다. 홀로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 가족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목표에 따라 취업이 가장 잘 된다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가장 취업률이 좋았던 기계공고는 떨어졌으니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 취업이 잘 되는 곳으로 갔다. 부산의 한 전자공고였다. 이 선택이 내 삶을 바꿨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 안 한 것 치고 괜찮은 성적을 거뒀고 2학년 마치자마자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처음 생긴 '2+1' 제도 1기로 학교에서 가장 먼저, 가장 좋다는 S전자에 취업했다. '2+1'은 산학협력 제도이다. 2년 동안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3학년은 현장에 나가 일하며 배웠다. 3학년 개학 첫날 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십여 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재학생들한테 손 흔들며 첫 직장으로 떠나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설렘 가운데 시작한 직장생활이 위기를 맞은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표대로 일찍 돈벌이를 시작했지만 모든 게 생각 같지 않았다. 직장은 좋았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돈이 다가 아니었다.


새로운 꿈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주야로 2교대 직장생활을 하며 수능 준비를 하던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기숙사 독서실에서 오후에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책장 한켵에 뽀얀 먼지로 덮여 있던 책들이 보였고, 그중 한 권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영화에서나 볼만한 운명의 순간이었다. 주변 것들은 다 뿌예지고 목표물만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 인생에 두 번 있었는데 그중 한 번이었다. 그 책을 무심코 집어 들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국제화 관련 내용이었다. 앞으로 세계가 열리고 하나 되는 글로벌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당시 공고생으로 현장에서 일하던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후에도 큰 조직시스템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소모품처럼 지쳐갈 때 이 책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한번 있는 삶, 세계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막연했지만 이 꿈이 내 가슴을 고동치게 했고,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꿈이 나를 엔지니어에서 외국어, 국제분야 전문가로 바꿔 놓았다.


꿈이 구체적인 비전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에는 꿈꾸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꿈 때문에 고단한 직장생활 중에서도 4년제 야간 대학을 졸업하고 퇴사해 유학까지 떠날 수 있었다. 꿈에서 깨기 시작한 건 유학 후 늦게 들어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였다. 유학 이력 때문에 통역병으로 군 복무를 했고 외국어 능력도 최대한 키울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외국어만 잘하면 당장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통역 정도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꿈은 잠시 접어두고 재취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2006년이다. 다행히 재취업한 두 번째 직장도 좋았다. 통역 때 만난 의뢰인의 소개로 지자체 산하 국제교류기관 러시아 전문가 채용에 응시해 합격했다. 직장 일은 보람 있었지만 3년 정도 지나 다시 퇴사를 고민하게 됐다. 정체된 직장생활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 잊고 있던 꿈이 다시 생각났다. 이때부터 꿈을 이루었을 때 내 모습과 구체적인 방법, 나이별 할 일 등을 글로 적었다. '비전의 사람 000'이라는 소제목의 비전 선언문을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꿈이 비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비전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이후 퇴사 고민이 누그러들었고 그 에너지를 일 경험을 쌓고 성공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데 쏟을 수 있었다.


선언적 비전은 구체적인 경력 로드맵과 실행 계획을 만나 더 구체화되었다. 직장 6년 차가 되자 내 퇴사 고민은 더 강렬해졌고 퇴사 준비도 본격화되었다. 이때 비전 2020 프로젝트를 만들고 45세까지 주 21시간, 10년 간 1만 시간을 투자해 글로벌 기업가로 홀로 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5년 단위 계획과 구체적으로 비전을 어떻게 실현할지 세부 목표도 세웠다. 이 비전체계는 이후 1년 단위로 갱신했고, '당장 퇴사했을 때 써먹을 수 있는 비즈니스 플랜', '30배 60배 100배 성과지표', 개인 재정계획 등 분야별 목표도 추가했다. 이 목표에 따라 실제 새벽과 주말에 시간을 내어 책쓰기, 자격증 준비, 재테크 공부 등 퇴사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갔다. 아무리 큰 꿈도 잘게 쪼개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하면 이룰 수 있다. 내일을 위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꿈에 합당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면 아무리 큰 꿈과 비전도 실현 가능한 적당한 크기가 된다.

                                                                                                                                 

개인 비전을 만든 경험은 회사 일에도 도움이 됐다. 이전 회사 기획팀장으로 있을 때 '신비전 2025'라는 조직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만든 것이다. 보통 몇 천만 원까지 외부 용역을 줘서 만드는 걸 자체 계획을 통해 완성했고, 그 결과 기관 경영평가도 최우수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직급이 올라가고 회사 생활이 안정화되면서 이 비전과 계획은 점차 잊혀져 갔다. 하지만 놀라운 건, 갑작스런 퇴사 후 돌아보니 시간표는 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년이 바로 내가 홀로서기를 목표한 20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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