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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Apr 12. 2022

모바일 오피스, 길 위의 사무실을 드립니다

패스워커의 생각법_일터

길에서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멘탈 관리도 한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길만한 것이 없다.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의미요, 가장 좋은 일이다. 걷기는 퇴사 후 생긴 새로운 습관이자 경건한 의식이 되었다.


"길만큼 좋은 사무실이 없다." 직장을 나온 뒤 알았다. 당연히 나가던 회사, 업무 공간을 대신해 일할 곳이 필요해서다. 처음에는 공유 오피스도 알아봤다. 도서관에 둥지를 틀고 새 일과 사업 구상에 몰두했다. 작은 월급만큼 세내는 가게 안에 사무 공간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어떤 것도 길 위의 사무실에 비할 수 없었다. 혼자 일하는 입장에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일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평생 직장인'일 때는 알지 못했던 사무실의 역할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정해진 출퇴근 시간과 좌석 배치까지, 그 모든 것이 한번 나가면 싫든 좋든 일을 하게끔 만들어줬다. 비록 그렇게 꽉 짜인 구조는 아니지만 길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일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을 길에서 찾았다. 비록 회사처럼 폼나고 그럴싸한 자신만의 칸막이 공간과 넓은 책상은 없지만 말이다.


길 위에서 '진짜 일'을 한다. 새로운 직업이 창직가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새로운 업무 구상다. 어떻게 걸으며 글을 쓰냐고? 새로운 글 소재를 찾고, 글의 구조, 전개 방식을 다듬는다. 어떤 때는 글의 문장들이 떠올라 구체적인 표현들을 일일이 받아 쓰기도 한다. 주로 스마트폰 캘린더 메모장에 기록했다가 글쓰기 폴더, 파일로 옮겨 적는다. 브런치에 적은 많은 글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새 사업 아이템도 마찬가지다. 글처럼 새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발전시킨다. 어떻게 구체적인 직업으로 연결할지 고민한다. 그 외, 업무보고도 받는다. 1인 기업이라 다른 직원은 없지만, 무의식 군단이 그 역할을 한다. 기획팀, 재무팀, 인사팀, 홍보팀 등 필요한 관점별로 직보 한다. 신사업을 보고하고, 수익화 방안을 찾으며, 무엇을 새로 배우고, 어떻게 홍보할지 그때그때 스스로에게 속삭여 준다. 길을 나서기 전 오늘의 당면 과제 2-3개를 입력하면, 걷는 중에 아웃풋이 쏟아진다. 어느새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일이 되었다. 블로그 필명도 패스워커로 바꿨다. "길을 내고, 일어나 다시 걷는 창직가 여정. 퇴직 후 나만의 직업을 짓는 작가로 1인 기업 합니다^^"


걷기 운동과 멘탈 관리에도 탁월다. 퇴사 직전 대사증후군을 앓았다. 나이 들며 정체된 오랜 직장생활의 습관이 쌓인 결과였다. 이것을 새로 걸으며 고쳤다. 치솟던 혈압을 잡았고, 당뇨병에 가깝던 식후 400의 당수치를 정상 공복혈당 100까지 떨어뜨렸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몸무게를 15kg 뺐다. 뱃살도 쏙 들어갔다.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의 정체도 걷기로 잡았다. 걸으며 퇴사 직후, 또 중간중간 우울한 마음을 떨쳐냈다. 새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잡생각을 다스리고, 퇴직 후 평생 직업 거리를 찾았다. 코로나로 일이 안 풀릴 때도 그랬다. 길을 나서며 무기력한 마음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걸으면 문제가 풀린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뇌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시형 박사의 말이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복잡한 일들이 엉켜 결론이 나지 않을 때, 기획은 해야 하는 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풀릴 때까지 책상 앞에 버티고 앉아 끙끙대진 않는가? 이럴 때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일단 장소를 바꾸면 뇌의 회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 (이시형 지음, 특별한 서재)


길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힘이 된다. 멘탈 강화를 넘어 효과적인 목표 관리에 도움이 된다. 실패의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길을 나서보자. 그것 자체로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다. 느긋하게 길을 걸으며 단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으로 족하다. 힘차게 발을 구르고, 호흡을 내쉬고 들이키며, 주변 경치와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럼 부정적인 감정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다. 목적지를 향한 걸음 속에서 자기 일의 목표를 다시 상기할 수 있다. 이것이 일터의 본질 아닐까. 연간 사업이나 큰 목표를 정하고 하루하루 일정한 일의 분량을 채우는 것. 이것을 보다 안정적으로 이룰 수 있게끔 사무실이 있다. 멈추지 않고 출근하기만 하면, 길을 계속 걸으면 언젠가 목적지에 이른다. 처음에 무리해 보이던 업무 목표도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해결된다. 길에는 이런 정신이 깃들어 있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한 번씩 퇴사 직후 걸었던 그 길을 걷는다. 그럼 그때의 느낌과 각오, 작업 과제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시간은 지났어도 길을 걸었던 자신의 모습을 여전히 그 길 위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마음을 되새기고 다시 걸을 힘을 준다.


더 직접적으로 걷기를 목표 관리에 활용할 수도 있다. 길 가는 목적지와 과정에 일의 과제를 대입해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담대한 목표를 잡아보는 것도 좋다. 평소 걷던 거리보다 1-2시간 더 걸리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느낌을 목표한 일을 성취한 뒤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해 오버랩시키면 된다. 걷는 과정은 일 할 때 겪는 장애물, 해결과제 등과 연결하면 된다. 걸으며 자연스레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긴 길이라면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코스를 3등분 등으로 쪼개는 것도 괜찮다. 그 각각 코스에 연간 중점 목표, 일하는 시스템, 일일 루틴 등의 요소들을 대입할 수도 있다. 자신이 연간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그 대상이다. 세부 코스도 마찬가지로 목적지를 정하고, 각 장소에 도착했을 때마다 일을 성취한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그럼 자연히 길을 걸으며 생생한 목표를 다시 되새기고,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매진할 수 있다.


목적지를 향해 걷다 보면 진짜 장애물이 생기기도 한다. 몸이 지치기도 하고, 때론 소나기도 만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난관에 부닥쳤다고 성내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참으면, 그것은 그저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심해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들다면 잠깐 쉬거나 한발 물러나 기다리면 된다. 그럼 곧 비 온 뒤 갠 하늘을 보게 된다. 희뿌연 비구름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햇살이 비친다. 유리 위 방울방울 맺힌 빗방울, 상쾌한 공기와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길을 포기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정겨운 풍경을 다시 만나게 된다. '오 솔레 미오' 노래 가사처럼 폭우는 지나갈 것이다. 계속 길을 걷는다면 결국 삶의 반짝이는 순간, 사랑하는 것들을 만나게 된다.

얼마나 멋진 햇볕일까.
폭풍우는 지나가 하늘은 맑고 상쾌한 바람에 마치 축제처럼 햇빛이 비쳐왔다.
그러나 그 태양보다도 더 아름다운 너의 눈동자.
오, 나의 태양이여,
그것은 빛나는 너의 눈동자,
너의 창에 빛은 비치고 너는 빨래를 하면서 높다랗게 노래 부른다.
그리고 꼭 짜서 손으로 펴고 다시 노래를 부른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그러나 그 태양보다도 더 아름다운 너의 눈동자.
밤이 와서 태양이 질 때,
너의 창 밑에 와서 쓸쓸히 나는 멈춰 선다.  
-이야기 팝송 여행 & 이야기 샹송칸초네 여행 (변정민 지음, 삼호출판)

삶 전체로 치면, 인생의 어떤 문제도 결국 찰나처럼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한발 한발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언젠가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목표를 이루는 건 시간문제다. 단지, 어떤 장애물 속에서도 중단하지 않고 길을 걷는 것.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비록 잠시 비를 만나 쉴지라도.


길을 걷는 것이 어느 순간 목적이 되었다. 그러자 진짜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다. 2-3시간 거리도 정신없이 몰입해 걷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곳에 도착해 있다.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잠깐 그곳에 머물고 다시 돌아와야 할지라도 아쉬움이 없다. 이미 길 위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삶의 어떤 목표나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실제 하루 일하는 시간, 이룬 것이 많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것보다 날마다 나아지고, 더 나아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렇게 늘 새로운 장소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날 준비가 됐다. 노마드 라이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는 이렇게 노래했다. 긴 전쟁을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를 기렸다. "길 위에서 그대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그대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그대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그대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오늘도 길 위에서 부유해진다. 산책의 여유를 누리고, 멋들어진 사업 구상도 척척한다. 도서관에서 흥미로운 책을 찾고 글도 쓴다. 짧은 시간이나마 만족할 만큼 일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한다. 흐르는 시냇물과 새소리, 들풀의 환대 속에서 여행은 덤이다. 새로 생긴 예쁜 카페와 만두 찜통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조차 눈요기 거리다. 방과 후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수다 소리에 귀를 트고 사람을 만다.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공짜다. 길 위에 나만의 사무실을 하나 차려보자. 언제 어디서나 오감을 우고 일하게 하는 모바일 오피스다. 걸으며 계획한 모든 일을 이루고, 삶의 풍성함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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