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는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자신의 통역 비용은 어느 선에서 정할까. 요즘 같이 해외 방문객이 뜸하고, 비대면이 뉴노멀인 된 세상에서 통역자의 역할은?" 다시 통역사로 뛰다 보니 생긴 질문들이다. 사실 퇴사 후 바로 할 밥벌이 활동으로 통역을 꼽았다. 새로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플랜B 였기 때문이다. 통역은 회사에서도 가장 오래한 일이었다. 물론 연차가 쌓이고, 관리자가 되고 하면서 통역 일선에서 떠난 지 꽤 돼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업 DNA에는 통역사의 피가 뛴다. 대학 때 전공도 외국어, 유학도 통번역 대학원, 군 복무도 통역병으로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직장을 떠난 후 다시 공공기관에 재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통역 일 때문이었다.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하다, 새로 생길 공공기관 초기 담당 부서장을 만났다. 거기서 해당 언어 담당자가 필요하다며 입사 제안을 받았다. 고민 끝에 특채 공모에 응시했고 기관 설립 멤버로 일할 수 있었다.
통역 일을 다시 하며 요금을 정했다. 기준은 기본 2시간에 30만원, 추가 1시간에 7만원, 출장비 별도다. 요금을 정하는 방법은 간단히 할 수 있다. 먼저 지역이나 전국 주요 외국어대학, 협회 등 표준이 될만한 곳의 해당 언어 통역 요금표를 본다. 그리고 상위 통번역 회사 몇 군데의 요금 정도를 더 참고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본인이 주로 하고자 하는 활동 영역의 통역사 경력이나 학위, 언어 수준 등을 기준 삼아 자신의 통역 비용을 정하면 된다. 이 가격은 이후 들어오는 통역 일감이나, 자신이 소화해내는 정도, 의뢰인 만족도 등을 보고 조정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최상위 통역사보다는 낮게, 대학원생 이상에 가까운 수준에서 포지셔닝했다. 현장 경력과 자격은 괜찮지만, 통역 일을 다시 시작하는 입장이라 무난한 요금을 정한 것이다. 물론 하는 일에 따라 이 요금이 싸다고 하는데도 있고, 비싸다고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결코 통역사에게 이 정도 비용은 많은 돈이 아니다. 요즘 설비, 전기, 목공 등 웬만한 기술자 불러도 보통 일당 30만원 정도는 하지 않는가. 통역 일 같은 경우 현장에서 2시간에 마친다 해도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것까지 합치면 실제 활동 시간은 더 느는 셈이다. 이제까지 투자한 시간은 어떤가. 대학 최소 4년, 유학, 실무 경력까지 합치면, 경험 있는 통역사의 경우 10년은 넘어야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
통역사 일은 코로나 시기와 딱 물려서 별로 재미를 못 봤다. 전화, 화상회의, 채팅 등 비대면 통역 의뢰만 몇 건 간간이 들어왔을 뿐이다. 그래서 온라인 통역 서비스도 새로 개설했다. 주로 정기적인 수요가 있지만 간단한 비대면 업무가 필요한 경우를 대상으로 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상근 통역 연락관 서비스
◈ 내용 : 메일, 전화 등 주 1-2건 정도의 간단한 일상 업무연락 통역 대행 (월 1시간 내외) ◈ 비용 : 월 30만원 + 추가 1시간당 7만원 (최대 8시간 내외) ※ 최초 1회 사업 자문 20분 내외 무료. 그외, 추가 상담이나 출장 시 별도 요금 부가. 통신비 과금 정도나 업무 난이도에 따라 추가 요금 발생 가능
온라인 통역은 기본 2시간을 1시간 내외로 줄였다. 정기적 연락이 필요한 온라인 특성상, 1시간이라도 일정 기간에 걸쳐 수회 연락이 반복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준비 등의 과정을 거치면 실제 시간은 훨씬 많이 든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있다. 이 정도 간단한 연락은 굳이 통역사가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통 언어인 영어나 온라인 번역기 등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온라인 상에서는 시간 제약도 덜하다. 결국 이 정도 일상 통역은 비싼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중대한 사업을 새로 세팅하거나 격식을 갖춘 공식 회의, 공문서 발송, 복잡한 문제 해결 등일시적으로 난이도 높은 대화가 집중적인 필요한 경우를 설정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상횡이 항상 있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중간중간 반복되는 경우가 비상근 온라인 통역자를 쓰기에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회사 규모나 많지 않은 업무량 때문에 정규 외국어 담당 직원을 둘 수 없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실제 온라인 통역을 의뢰한 경우도 그랬다. 대부분 돈 떼일 위기에 있거나, 사업 전환기, 새로운 일이라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경우 언어 소통이유도 있지만 다급한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 통역사만 부르면 모든 문제를 단번에 쉽사리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통역사는 언어 전문가이지, 각 의뢰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상황 전문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의뢰인의 상황은 그 누구도 자신만큼 잘 알 수 없다. 그리고 통역 내용에 있어서는 통역사도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온라인 통역의 경우 즉흥적일 때가 많다. 통역 대본이나 진행 시나리오도 없고, 자료도 없는 경우가 있다. 있어도 이런 것을 신경쓸 경황이 통역 의뢰자나 해외 고객에게 없기도 하다. 이런 경우 통역이 진행되면 통역자나 의뢰인 모두 난감해지곤 한다. 실제 한 통역 의뢰자인 경우, 원어민에 가까운 해외 동포 통역사를 불렀음에도 소통이 안되어 다시 통역을 의뢰한 적도 있었다. 화학 원료 수입관련 통역이었는데, 워낙 특수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일상 언어 능력이 뛰어나도 통역 내용 전달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수금 문제나, 첫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 거래이력 관리 등의 모든 상황을 통역사라고 다 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어 외적인 문제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의뢰인이나 통역사한테 다같이 어려운 문제다. 그렇기에 결국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문제 원인을 의뢰인 스스로 찾아야 한다. 영어 등 공통어 구사가 웬만큼만 가능하다면 본인이 직접 차고 나가는 게 효율성 차원에서 나을 수 있다. 그런데도 언어적인 통역이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과 언어 능력이 있는 통역사가 적합할지 꼭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통역할 내용과 상황에 대해 통역자와 먼저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해외 고객과 원활한 소통을 기대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당황하거나, 모든 것을 떠맡기 듯이 통역을 부른다면, 의뢰인 입장에서는 결국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점차 느는 온라인 통역이 주는 기회는 분명 있다. 통역사가 모든 내용과 상황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 가지 자기 전문 분야는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 이전 직장에서 지자체 시장단, 기업 회장단, 단체 대표단 등 의전을 겸한 회의 통역 경험이 풍부했다. 그리고 지역 전문가로서 다양한 해외 협력사업을 기획하고 직접 진행하며 통역을 겸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VIP 통역, 한-러협력 분야를 전문으로 삼았다. 이렇듯 온라인 통역 분야도 충분히 전문 영역화할 수 있는 것이다. 10년 넘게 다양한 통역 현장을 직접 뛰며 경험했지만, 비대면 온라인 통역의 세계는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현장감이 떨어져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 대화 상대의 주변 분위기나 제스처 등 비언어적 요소 파악 등 여러 부분이 걸렸다. 심지어 화면상에 시선은 어디에 두고 자신의 모습과 음성이 어떻게 상대방에게 전달되는지, 온라인 채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 기본 방법에서조차 난감할 때가 많았다. 물리적 공간에서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상대를 통역한다는 것 자체가 묘한 불안감을 줬다. 이렇듯 통역사가 각자 사용자와 용도에 맞는 다양한 채널 사용법을 익히고, 낯선 비대면 통역 진행 방식을 능숙하게 가이드할 수 있다면 어떨까. 분명 지금 같은 물리적으로 막히고 비대면이 횡횡한 세상에서 통역 언어는 물론 세계 간 교류에 의미 있는 가교 역할이 가능할 것이다.
온라인 통역에 있어 플러스 알파 요인도 있다. 비대면 공간의 승자는 오프라인 세계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화상회의 통역을 할 때, 해외 행사 주관사의 정체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이름도 낯설고 별로 내세울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쟁쟁한 국내외 지자체나 공공기관이나 주요 기업 등의 참여를 이끌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간단한 행사 소개와 연혁, 참가자 목록과 신청 양식 등을 갖춘 홈페이지가 다인 것으로 보였다. 당일 행사 진행도 시원치 않았다. 오랜 행사를 진행해온 경험으로 비추어, 그냥 장소만 섭외하면 누구나 진행 가능한 그저그런 수준으로 보였다. 방식은 이랬다. 호텔 회의장을 예약하고, 상담 테이블과 노트북, 인터넷을 설치한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담당 직원 또는 자원봉사자를 배치한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 현지 참여자를 30분, 1시간 등 정해진 시간 단위로 오게 한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 그 회사 관계자와 만나기로 한 해외 참가자를 서로 연결해주는 것이다. 예약한 사람이 안 올 때도 있고, 화상회의 프로그램 오류가 나거나 주변 잡다한 소음 등 방해 요소가 생겨도 뾰족한 대응이 없다. 그저 자리만 깔아놓고, 정해진 온라인 채널에 시간별로 사람들이 만나 서로 관심사를 묻고 답할 수 있게 해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럼에도 코로나 초기, 대개의 온라인 참여자들이 그저 감사하는 듯했다. 해외 왕래 길이 끊어져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런 현실 속에서 갈 수 없고 보지 못하는 상대와 그저 연결된 것만으로 안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온라인 세상에서는 조직 규모, 번듯한 시설, 인력, 자금 등 물리적 기반 없이도 주목받을 수 있다. 온라인 채널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사람들의 관심사를 이어줄 수 있는 네트워킹 능력만으로 막힌 오프라인 세상을 압도할 수 있다. 이 만남의 가치는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스스로 만든다. 결국 온라인 세상에서는 이런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실행해볼 상상력과 채널 운용능력, 조그만 네트워크만으로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온라인 통역으로 엿본 이런 세상의 변화는 분명 통역사나 외국어, 국제 활동가에게 울림을 준다. 물리 세상이 막힌 위기를 온라인 채널로 다시 뚫어낼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해외 채널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일개 개인도 자신의 채널만 있다면 언제라도 국제적인 만남의 장을 열고, 자기 주도로 원하는 프로젝트 만들어 중심자 역할이 가능하다. 언어가 다른 여러 분야 사람들을 모아 협력의 판을 깔 수 있다. 돈으로 장소를 살 필요도 없고, 행사 조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만 잘 파악해 반응할만한 곳으로 던지면 된다. 만남과 소통의 절차, 방식을 만들고 그저 온라인 상으로 초대만 하면 된다. 단지 기존 해외 파트너들과 채널 초대를 거부하지 않을 약간의 신뢰가 필요할 뿐이다. 원하는 결과까지 만들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니면 어떤가. 만남 그 자체가 일의 시작이고,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현실의 길이 사방팔방 꽉 막힌 시대, 온라인 채널을 지배하는 자가 '미(Me) 플랫폼'이 된다. 오프라인 세상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