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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Feb 16. 2022

꿈은 때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찾아온다

게스트하우스로 꿈을 이루는 99가지 방법 No.1

먼지가 내려앉은 유리문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임대. 010-xxxx-xxxx. xx 부동산"

"전화라도 한번 해볼까?"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 일로 인해 어떤 일이 불어닥칠지. 호기심에 전화번호를 눌렀다. "xx 부동산인가요? 000 앞 게스트하우스 매물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이것저것 물어봤다. 임대료는 얼마인지. 언제 동안 공실로 비어있었는지. 임대가 나온 이유는 무엇인지. 수익은 얼마가 나는지. 임대료를 깎아줄 수 있는지까지. 통화하고 얻은 결론은 "해볼 만할 것 같은데"였다. 지역의 중심 KTX역 인근이었음에도 임대료가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당시 직장인으로 받던 월급의 절반, 여웃돈 정도 넣으면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회사 다니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어떻게 운영하냐." 이 일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다.


한 달 남짓 지났을까. 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했던 어머니를 면회 갔다가 마음을 굳혔다. 어머니는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여전히 일을 놓지 못했고, 건강도 우려가 되었다. 누나가 다니는 직장도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혼자는 안 되지만 가족들과 함께라면 이전에 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부동산에 연락했다. "게스트하우스 아직 안 나갔나요?"


가족들과 함께 다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이번에는 부동산 실장도 함께였다. 처음 들어간 게스트하우스 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5개의 객실 안에는 쓰다만 수건과 이불이 이쪽저쪽 널브러져 있고, 머리카락과 시꺼먼 먼지가 덩어리 채 엉켜 복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테이블과 사물함, TV 등 각종 집기류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진득진득하게 얼룩져 있었다. 냉장고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에, 온갖 벌레 잔해로 누렇게 변색되어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사무실 안은 부서진 침대 조각과 각종 서류, 잡동사니들이 폐가 수준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숙소 안에 꽉 찬 냄새는 며칠을 빼내야 할 정도로 고약했다. 버린 폐기물만 작은 용달차 2대 분량 가까이 나왔다. 이후 사업성 검토와 임대 계약을 거쳐 가족들과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병원을 대신할 소일을 찾았고, 누나는 게스트하우스 대표가 되었다. 나는 공동 운영자로 그토록 원했던 사장의 꿈에 한발 더 성큼 다가섰다.




첫 직장 기숙사 독서실은 단출했다. 위치는 1층 입구 왼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 오른쪽 5열씩 20여 개의 독서실 칸막이 책상이 마주 보고 이었다. 독서실 문 맞은편에는 항상 보랏빛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갈색 책장 한 짝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독서실 안은 대개 한산했다. 휴일 빼고는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끔 있던 몇 명의 이용자마저 낮 시간에는 없었다. 2교대 탓에 주로 낮에 혼자 독서실을 사용할 때가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뒤늦게 야간 대학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독서실 자리에 앉으면 가장 먼저 먼지를 털어내곤 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근무 교대 후 잠을 자고 내려와 혼자 독서실에 앉아있었다. 퀭한 정적이 감도는 한낮의 독서실 안, 무료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그날따라 왠지 문 옆의 책장에 눈이 갔다. 그 안에는 언제부터 꽂혀있었는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무심코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빨려 들어가 듯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마치 온 우주에 자신과 그 책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파란 표지의 두꺼운 책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국제화 관련 내용이었다. 그중 앞으로 세계가 열리고 하나 된다는 말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90년대 중반, 고등학교를 마치고 막 사회에 나온 초년생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이야기였다. 그날 이후 꿈이 생겼다. "한번 사는 인생, 세계를 바꾸는 원대한 일을 해보고 싶다."





왜 아무도 안 거들떠보는 것, 먼지를 뒤집어쓴 것에 끌렸을까. 단지 무료하고 할 일이 없어서? 아니면 절묘한 우연이라든지 운명이라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당시 자신의 모습이 바로 그 먼지 같지는 않았을까. 거대한 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진, 아무런 쓸모없이 그저 흩날리고 소진되어 가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비록 티끌 같은 먼지 속에서 발견했지만, 꿈의 위력은 컸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꿔놓았다.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알지 못했던 어디론가 삶을 이끌어갔다. 첫 직장에서 만난 책이 가슴을 뛰게 했고, 세계라는 넓은 무대를 품게 했다. 공고생에서 외국어 전문가로 탈바꿈시켰다. 두 번째 직장에서 얻은 게스트하우스는 어릴 적 원천적 꿈을 기억나게 했다. "돈을 많이 버는 사장이 되고 싶다"라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가졌던 소박한 꿈이다.


꿈은 때론 먼지처럼 하찮게 보인다. 꿈을 이루기 위해 첫 직장을 나와 유학하던 시절, "잘할 수 있을까. 좋은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꿈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자, 현실의 다른 문이 열렸다. 직장을 다니며 야간에 전공한 외국어는 퇴사 후 더 심화할 수 있었다. 해외 통번역대학원 유학으로, 통역병으로 완전히 외국어 전공을 살렸다. 이후 통역 프리랜서를 거쳐, 공공기관 해당 외국어 담당자로 재취업할 기회도 얻었다. 모두 첫 직장을 나올 때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꿈꾸고 도전한 것만으로 어느 순간 이룬 것이다. 꿈이 현실 길을 터줬다. 두 번째 직장도 꿈 때문에 나오게 됐다. '글로벌 CEO, 45세까지 기업가로 사업 정착'이란 개인 비전 문구가 항상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직장 일이 흔들릴 때, 지루해질 때 이런 마음은 더 커졌다. 그러다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시도한 것이 게스트하우스 인수였다. 덕분에 진짜 사장이 됐다. 직장 일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자 여러 갈등이 생겼고, 마침 회사 상황도 안 좋아져 퇴사하게 된 것이다. 물론 두 번째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돈을 많이 벌기는커녕 사업은 코로나 상황에 꽉 막혀있고, 운영자로 풀어야 할 과제만 잔뜩 쌓여있다. 다시 습한 먼지 속으로 기어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안다. 결국 그 꿈이 진짜라면 언젠가 그것에 걸맞은 삶을 살게 된다. 단지 먼지 속에 뿌옇게 보이는 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오늘을 버티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꿈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현재를 관통한다. 오지 않을 먼 미래를 비추는 것 같지만, 당장 오늘을 살아갈 가슴을 고동치게 한다. 대책 없고 답답한 현실을 헤쳐나갈 힘을 준다. 꿈꿀 때 가장 열심히 살았고,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알지 못하던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냈고,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가장 빛나는 인생의 전성기를 누렸다. 반면, 현실에 안주하며 꿈을 잊어버렸을 때 삶도 시들해졌다. 매너리즘에 빠졌고, 마음이 흔들렸다. 채워지지 않는 거짓 만족을 쫓아 방탕해지기 일쑤였다. 혹시 꿈이 먼지와 함께 누더기를 쓰고 찾아오더라도, 너무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결코 박대하지 말자. 그 꿈이 주는 하루를 소중히 품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빛 볼 날이 온다.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놓지 않고 전진하다 보면, 먼지 속에서라도 꿈을 찾을 수 있다. 먼지 같던 자신을 닦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삶을 살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세계 자유여행객이 몰려오는 곳, 돈으로, 경험으로, 꿈으로, 시간으로, 물품으로, 뭐든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요금을 내고 마음껏 머물 수 있는 곳. 중단기 숙박, 문화카페, 교육장, 협업공간, 아르바이트 등 여행과 교류, 일 등이 복합된 글로벌 노마드 협업공간. 여러 나라 친구들을 한 곳에서 사귀고, 해외 물품과 서비스가 온디맨드로 연결되며, 세계에서 들어온 사람 정보와 경험이 축적되어 새로운 비즈니스와 직업, 가치 혁신이 일어나는 곳. 바로 세계 곳곳의 게스트하우스가 동일한 서비스로 연결된 국제 여행숙박자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전 세계 글로벌 노마드들이 협력해 세계 차원의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민간 국제 네트워크의 중심에 우리 게스트하우스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게스트하우스가 꿈이라고'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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