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퇴사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20년, 두 번 퇴사했다. 하나는 대기업, 하나는 공공기관이었다. 두 곳 다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자연히 퇴사 고민도 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후회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직장 생활 내내 독하게 퇴사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첫 직장 5년은 줄곳 야간 대학을 다녔고, 졸업과 동시에 유학을 떠났다. 당시 퇴사를 앞두고 삭발까지 감행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생뚱맞다. "퇴사하는데 웬 삭발이람?" '푸훗' 웃음이 나기도 한다. 무슨 큰 전쟁에라도 나가는 병사처럼 '퇴사전'에 임했다. 혹시나 퇴사 이후 마음이 흐트러지고, 뜻을 이루지 못할까 걱정돼서다. 그만큼 좋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에 갈등했다는 방증이다. 열정이 넘쳤고, 결연한 시기였다. 순수했다고 해야 할까. 두 번째 직장은 13여 년 동안 근 10년을 퇴사 준비에 매달렸다. 새벽 5시에 나가 글쓰기, 자기계발 등 각종 직업능력을 키웠다. 퇴사 후 써먹기 위해서였다.
말과는 달리 퇴사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특히, 과도기적 시기를 겪을 경우 더 그렇다. 두 번째 퇴사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새로 계획한 일은 거의 올스톱이 됐다. 운영하는 가게도 폐업 직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찌 직장에서 편하게 먹던 '따순 밥'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으랴. 그것도 이전 직장은 공공기관이었다. 아마 이런 팬데믹 상황에서 조금 더 느긋할 것 같았다. 영업 안 해도 지원받는 예산에서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재택근무, 자가격리, 거리두기 등도 문제없었지 않을까. 이전에도 빨간 날이면 꼬박꼬박 쉬었다. 연차부터 출산휴가까지 법정 휴일, 정부 지침은 어김없이 지켰다. "직장에 있었다면 어쩌면 위기가 쉬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한번씩 스치고 지나갔다. 코로나로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비하면, 안정된 직장생활은 그야말로 '딴 세상'인 셈이다.
퇴사 후 미묘한 심정은 때론 더 울렁인다. 바로 이전 직장 소식을 들을 때다. 직장 동료나 후배 소식을 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직접 만날 때도 있다. 그럴 경우, "아직도 저러고 사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난 자신에 한참 안도하다가도, 직장 동료들이 그저 함께 일하는 모습만 봐도 왠지 짠하다. 향수를 느낀다. 이전 회사나 하던 업무가 뉴스에라도 나오면 어떨까. 모처럼 소식에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떤 때는 이런 뉴스를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 자기 없이도 여전히 잘 돌아가는 회사가 야속한 것일까. 혹시라도 부러워지면 어쩔까 걱정돼서 일까. 마치 옛 연인의 결혼식에 어떻게 참석할까 저려오는 마음과 같다. 퇴사한 지 오래됐는데도 이런 마음이 든다면? 아직 이전 직장생활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새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지난 사랑을 떠나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뭔가. 바로 새로운 '진짜 사랑'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와 나이 든 때의 퇴사 느낌도 다르다. 일출과 일몰, 뜨고 지는 해 같다고 할까. 젊었을 때는 퇴사해도 후회할 겨를이 별로 없다. "정 안되면, 어디 다시 들어가면 돼지." 왕성한 에너지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 회사에서의 추억 거리도 많지 않다. 반면, 회사에서 함께 한 시간이 늘고 나이가 들면 어떤가. 청춘을 바친 기억들이 곳곳에서 아련하게 떠오른다. 뭔가를 새로 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점차 힘에 부친다. 재취업이나 다른 선택지도 줄어든다. 일할 수 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아 만회할 시간이 부족하다. 조금만 삐끗해도 돌이킬 수 없이 후회할까 봐 조심스럽다. 젊어서는 현실적 경험이 부족해 직장을 선택한다면, 나이 들어서는 현실을 너무 잘 알아 회사를 떠날 수 없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그럼에도 직장 독립, 퇴사를후회 않는 이유는 한가지다. 바로 언젠가 한번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퇴직자는 전쟁을 마친 병사가 고향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커리어의 끝을 향한다. 그 지점은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거나, 자기가 꿈꾸고 좋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오롯이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갈등 없이 사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평온하게 보내는 여생을 바란다. 비록 돈은 적더라도 인생의 의미와 최종 목적에 주목한다. 평생 일하지 않고 먹고살만한 돈을 모아뒀다면, 완전 은퇴 후 취미생활을 찾을 수도 있다. 지는 해처럼, 자신이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아는 것, 평생 지속 가능한 일을 찾는 것이야말로 경력의 궁극적 목표다. 과연 회사 생활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면 결국 퇴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 힘이 떨어지기 전에 새 길을 찾아야 한다. 여기 후회의 여지는 없다. 산란철 귀향하는 연어가 강가에서 비록 탈진해 죽더라도, 그 여정은 참으로 아름답고 당연한 것 아닐까.
직장을 나오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퇴사하니 지상낙원, 너무 좋다." "직장 밖은 지내보니 더 지옥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다. 실제 아무리 궁색한 퇴사자도 어떤 면에서는 가장 부유한 직장인이 결코 따라올 수 없다. 직장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과 선택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반면, 현실 문제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직장 밖 가능성은 단지 약속 어음일 뿐이다. 몇 푼 안되더라도 바로 쓸 수 있는 수중에 현금과 비할 바 못 된다. 어떤 형편에서도 직장인은 예측 가능한 현금 생활자다. 많든 적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기대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직장은 때론 생명줄처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퇴사의 후회 여부는 보는 관점에 달렸다. 현재를 보느냐, 더 큰 가능성과 미래를 보느냐,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느냐, 얼마가 더 있어야 하느냐가 그 정도를 가른다. 조금이나마 후회를 덜하려면 보다 변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 궁극적 경력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에 의미를 둔다면 퇴사 후 어떤 후회감이 밀려오더라도 떨쳐낼 수 있다. 퇴사자의 과도기적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불안한 퇴사 지옥도 다가올 소망에 천국으로 바뀔 수 있다. 반면, 직장에서 잠시 잠깐 안락한 생활에 연연하다가 평생 불안한 노후를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정은 과정,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아무리 거창한 퇴사의 목적이 있더라도, 오늘 당장 먹고살 수 없다면 그 의미는 준다.
후회 없는 퇴사 생활을 위해 할 일은 뭘까. 먼저 회사 안에 있을 때 최소한의 생계 기술을 익혀야 한다. 업무적 능력도 좋고, 취미나 다른 특기도 좋다. 단, 퇴사 후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정도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 방법은 직장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 부업이나 회사 관련 프로젝트 경험도 좋다. 비상금이나 여유 자금을 마련해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준비가 없다면, 회사를 나와 단순 생계를 위한 일을 일정 기간 병행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평생 원하는 일을 하며 먹고살 '필살기'를 만들 때까지다. 또 하나는 자기 확신이다. 퇴사 후에는 불확실한 상황과 다양한 변수가 생긴다. 오만 잡생각에 잠 못 이룬다. 이런 가운데 새 일에 정착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려면 그 과정에 헌신해 크고 작은 성취들을 쌓아가야 한다. 종국에는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더 키우고 불안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서다. 이것은 퇴사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의 최종 경력 비전이 무엇인지, 잘하고 좋아하는 것 등의 자기 능력치와 어떤 방법으로 목표를 이룰지 등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퇴사 후 구상한 계획들을 바로 실천에 옮기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 없이 덜컥 회사를 나오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흔들리기 십상이다. 심지어 10년 가까이 준비해도, 퇴사자의 현실은 생각과는 또 다르다. 준비는 그저 준비일 뿐인 것이다. 결코 부닥쳐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리고 훗날 그런 변화무쌍한 현실과 마주칠 때 후회할지 말지의 답은 이미 지금을 사는 자기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