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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Mar 14. 2022

INFP 유형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

1인 기업형 인간의 갓생_MBTI 직장 활용법

"INFP는 안 뽑습니다" 아침에 뜬 기사 제목을 다시 봤다. "어, 이게 무슨 말이고?" 이런 특정 성향은 채용 시 배제되기도 한다고 했다. '씹프피', 사회생활 부적응자, 괴짜 등의 이미지로 치부될 때도 있다고. 채용도 연애도 MBTI에 중독된 요즘 세태를 다루는 기사였다. "INFP면 이건희, 셰익스피어, 아이유 등 천재적 인물도 해당되는 다양한 성격 유형 중 하나 아니었나?" 자신의 유형에 자부심을 가진 찐 INFP로 좀 빈정 상했다.


MBTI 성격유형 검사는 10여 년 전부터 관심을 가졌다. 퇴사 준비를 하면서 공부했던 강사 과정의 기본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대인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을 위해 필요했다. 이후 에니어그램, DISK 등 다양한 성격 검사를 두루 접했다. 이런 지식은 자기 탐구와 함께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됐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성향에 맞는 다양한 관계 방식을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성격 검사는 물론 회사에서 전문가를 초청해 정식 검사를 했을 때, 중간에 수차례 셀프 간이 검사를 했을 때도 일관적으로 INFP 유형이었다. 중간중간 MBTI 유형 검사 결과가 바뀌었다는 사람에 비하면 진짜 INFP였던 것이다.


MBTI는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사람을 분류한다. 그 기준은 외향(S)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과 같이 4개의 선호 경향별 2가지 지표를 더해 총 8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INFP는 자기 내면에 집중(I)하며 직관(N)이 발달한 경우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F)하며 상황에 따라 변화 가능한 생활양식(P)을 따른다. 검사지에 따라 잔다르크형, 열정적인 중재자형 등으로 부른다. 애니어그램으로 치면 9개 유형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왕관 9번 유형으로, 평화주의자(또는 중재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런 유형에 가장 어울리는 조직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나 같은 경우 근 20년에 걸쳐 대기업, 공공기관 2개의 직장에서 일했다. 그중에서 후반에 있었던 공조직 근무가 참고가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직장생활 초기부터 MBTI를 잘 알고 일상 업무에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NFP 유형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최초 보직이었던 독립 기구에서 일할 때였다. 기관 부속 센터였는데, 센터장과 나 이렇게 총 2명이 직접 구성원이었다. 이때 좋았던 것은 우선 누구의 간섭도 크게 안 받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량권도 많았고, 기관 설립 멤버라 맘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디어 자체가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관계에 신경 쓸 일도 적었고 맡은 일만 묵묵히 하면 됐다. 두 번째는 우여곡절 끝에 기획팀장으로 발령받아 일한 초기였다. 당시 공공기관 혁신이 화두로, 기관 통폐합 등의 위기를 맞은 조직을 구하는 것이 일이었다. 온갖 갈등을 겪던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을 추스르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이 두 가지 일에서 조직 속 INFP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다. 평상시에는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조용히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 위기가 터지면 이런 유형은 각성한다. 어떤 유형도 따라가지 못할 폭발적인 에너지를 솓아낸다. 잔다르크형이라는 특징처럼, 오랜 시간 내면 깊숙이 쌓아온 신념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어울리는 유형이다. 이때 감춰뒀던 다양한 재능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더 헌신적이다. 겉으로 무뚝뚝한 것 같지만 마음 맞는 소수와는 깊은 친밀감을 나눈다. 그냥 혼자 사는 것도 너무 좋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유형이 INFP인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 INFP가 성과낼 수 있는 일과 역할은 무엇일까.


먼저는 비전전략 분야다. N(직관) 성향 때문이다. 이런 능력을 발휘하면 현재 일어나는 일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모든 상황을 종합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거기에다 내항성(I)이 더해지면 이런 직관적인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 줄곳 전략가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스스로도 단순한 하나의 일 보다는 일하는 전체 방식과 체계를 새로 만들거나 개선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일의 궁극적인 목적, 이상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현실에서 하나씩 성취해가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기획팀장으로서 조직의 10년 앞을 내다보고 중장기 발전계획 '신비전 2025'를 만든 것이다. 조직의 문제와 내외부 환경 분석, 발전전략과 실행계획 마련까지 방대한 작업이었지만, 경영평가를 며칠 앞두고 혼자서 뚝딱 만들었다. 보통 수천만 원의 용역비와 많은 시간, 인원이 필요한 일이었다. 덕분에 시청에서 하는 기관 경영평가 2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는 계기가 됐다. 작은 조직으로, 지역 유사 기관 중에 이런 중장기 목표를 수립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시적 계획에 따라 일관성 있는 한해 예산과 사업을 편성하는 부분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음은 선도적, 관념적 일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도 N(직관) 성향과 관련이 크다. INFP 유형의 한 가지 업무 특성은 비약적 일처리이다. 반대의 S(감각) 유형 같은 경우, 현실에 기반해서 일을 처리를 한다. 무엇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준비하는 시간 등 필요한 모든 현실적 요소를 일을 할 때 반영한다. 하지만 N유형은 현실적으로 덜 중요한 것은 생략하고 일의 본질, 개념 등 필수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대담하게 새로운 일을 감행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하다가 정 안되면 또 무슨 수가 있겠지" 하는 발상의 유연함(P성향)도 이것을 뒷받침한다. 또 I(내향)와 N(직관) 성향이 어우러져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특성을 강화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논리, 말과 글 등을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 특정 분야에서는 과도한 꼼꼼함을 발휘한다. 덕분에 조직 내에서 처음으로 정기 소식지를 발행하거나 포럼 등 학술적 행사를 열 수 있었다. 부서원이 1명뿐이었음에도 새로운 사업 모델을 먼저 만들고 다양한 시도를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은 중재자, 대변 역할이다. 이것에는 주로 F(감정), P(인식) 성향에 기반한다. F형은 원칙보다 인간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에 상황 적응적인 p성향이 더해져 각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마음이 넓다.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을 수 있다는 식이다. 거기에다  INFP의 이상주의, 완벽 추구 성향으로 여러 입장 조율하고, 모두 만족할만한 중재안 마련에 열심이다. I형 기질도 이런 과정에 한몫한다. 주변에 분쟁이 생겨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해서다.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한다. 그래서 이전 직장에서 임시였지만, 직원 행복위원장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한 선임 팀장의 독단적 업무 처리와 사람 무시 성향으로 회사가 뒤집어질 뻔 했기 때문이다. 거의 전 직원이 들고일어나 한바탕 소동이 생겼다. 부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때 새로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만든 임의 기구가 행복위원회였는데 여기서 직원들 입장을 대변했다. 이후에는 기획팀의 총무, 의전 업무를 맡으면서, 크고 작은 직원 애로사항을 경영진에 전하고, 경영진의 요구를 각 구성원에 전달하면서 충실한 대변 역할을 했다.


INFP의 단점은 장점을 뒤집어 보면 된다. 모든 성향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명암이 있는 것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 "뜬구름 잡는다.", "귀가 얇다." 같은 소리를 종종 듣는다. 또 본질에 충실하려다 보니 겉을 예쁘게 꾸미거나 '있어 보이게' 하는 일에 서툴다. 열심 내는 일에는 설교자 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다른 사람 입장에 몰두하다가 자기는 쏙 빠지고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침묵의 저항'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안 맞는 일은 기계적이고 관리적인 업무다. 규칙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형식적인 일에 진저리 친다. 첫 직장인 대기업 근무 때 빈틈없는 조직 시스템과 규율, 기능적인 일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두 번째 공공기관에서는 관리부서나 관리직에서 일상 업무를 볼 때가 힘들었다. 단순 서무나 회계 등의 일이나 엄격한 마감 시간이 있는 업무에 특히 부담을 느꼈다. 이런 일은 INFP에 있어 쥐약과 같다. 안 그래도 무탈하고 조용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 아닌가. 거기에다 이런 딱딱한 일이 더해지면 진짜 의욕이 떨어진다. 게으르고 나태한 본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INFP도 장점이 많다. 단지 세계 인구의 4%, 국내 2% 내외로 그 유형이 조금 적을 뿐이다. 특이하긴 하지만 반대로 보면, 그래서 희귀한 자원이 되는 것. 이런 유형을 잘만 활용하면 조직에서도 특별한 경쟁력이 된다. 비전과 선도자적 역량, 미래 통합적 가치가 얼마나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가. 


MBTI는 다른 여러 유형 간 차이점을 이해하고 서로 보완하는데 도움이 된다. 관리자로 있을 때는 팀장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팀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하 직원이 주로 상급자 눈치 보고 맞췄다면 이제 서로 노력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어떤 뒷담화를 들을지 모른다.) 이 설명서 내용을 보면, 각 포인트별로 INFP 유형이 선호하는 업무방식과 어려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대처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말하지만, INFP는 분명 조직형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1인 기업형 인간에 가깝다. 자유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년 직장생활 내내 더 심한 갈등과 퇴사 고민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내적 신념, 가치관이 확고해 이런 것과 안 맞는 상황을 못 견뎌한다. 보통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고지식하게 충돌할 수 있는 것이다. INFP도 회사 생활 잘할 수 있지만 항상 플랜 B를 준비할 이유가 여기 있다. 당당하게 회사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되, 언제나 이상 세계를 펼쳐갈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기억하자. INFP는 은둔 괴물도 구국 영웅 잔다르크도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팔색조 같은 인간들임을. 얼마나 믿고 인정해주느냐가 바로 그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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