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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ul 26. 2022

경주에 800만원짜리 집을 산 이유(2)

노마드 소액경매스쿨_집의 가치

"경주에 취했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800만원짜리 집을 산 이유 말이다. 경주의 아침은 설렌다. 일상을 여행처럼 바꾼다. 신라농약, 황성공원, 상점부터 버스정류소 이름까지 거리 곳곳에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렇게 봐서 그런 것일까. 흔한 길거리 가게의 기와지붕 인테리어조차도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른 아침 버스 안에서 코 골며 곯아떨어진 민폐 아저씨도, 바로 여행지도를 펼쳐들 것만 같은 외국인 아가씨도, 교복을 차려입고 바쁘게 등교하는 학생도, 서로를 말벗 삼아 어디론가 길을 나선 할머니 승객들도 왠지 정겹게 보인다. 여행자의 시선에는 언제나 묘한 행복감이 묻어난다. 경주 임장 때의 느낌이다.


경주 여행은 수차례 다녔다. 학생 때 수학여행부터, 청년시절 무전여행, 교회 MT, 회사 외국인 손님 가이드까지 그 시기, 방문지도 다양했다. 대표적인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천마총, 첨성대, 동궁 월지에서 지인들과 거닐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꺼내면 꺼낼수록 넝쿨처럼 주렁주렁 딸려 나올 것만 같다. 봄, 여름 한창 뜨거울 때를 지나 낙엽 지는 가을까지, 낮과 밤의 경주, 특히 야경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경주는 알고 보면 친숙한 곳이다. 여행을 딱히 많이 다니지 않아도 그렇다. 한 달에 몇 번씩 부산에서 경주를 경유할 때도 있었다. 포항에 경매로 얻은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경주는 또 다르게 보였다.


부산에서 아침 6시 전후에 집을 나왔다. 거의 첫 차를 타고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경매 나온 집까지 거리는 1시간, 왕복 2시간 남짓 걸렸다. 8시 정도에는 경주에 도착해야 했다. 넉넉잡고 3시간 임장 후 늦어도 11시까지는 경주 법원에 가서 경매 입찰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오른편, 경매 나온 아파트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200여 미터, 2-3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동네 분위기를 보며 바로 든 생각은 "어, 이 정도면 한달살기 해도 좋겠는데"였다. 경주 외곽 지역이었지만 대단지 아파트 바로 옆에 끼고 있었다. 기본 편의시설과 함께 논두렁도 보일만큼 전원 느낌도 물씬 났다. 이후 이 집의 단점들, 특히 임대주택인 것(!)은 좀 용서되었다(?). 흔히들 생각한다. "임대 주택 주변은 집값 떨어진다." 맞다. 하지만 안 팔고, 자신이 쓴다면? 분명 또 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아무리 오래되고 허름한 집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작은 집들을 사고 임대하면서 느낀 점이다. 잠깐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 없다. 여행 가보면 숙소가 부족하더라도 조금은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 얼마 있다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 안 새고, 무너 지지만 않으면 된다. 지붕 따가리, 난방, 취사 등 기본 시설만 있으면 사람은 살 수 있다. 특히 한 경매 집을 보며 생각했다. 포항의 13평짜리 작은 빌라였다. 주거 지역 한편 길 모퉁이에 노출이 심한 1층 주택이었다. 안 완전 어두컴컴하고 동굴 같이 거미줄이 곧장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3천만 원짜리가 24%, 700만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3명이 입찰해 30%, 900만원에 낙찰됐다. "이런 집도 사는 사람이 있구나. 그것도 최저가에서 2백만원이나 더 썼다니..."  그 집에 비하면, 경주 집은 '양반'이었다. 지난 5월 낙찰받고 한 달 납부 기일이 채 안 되어 잔금을 치렀다. 그때 경매계 담당자가 물었다.

"시간 남았는데 좀 더 알아보고 돈을 내셔도..."

"다른 지역이라 왔다 갔다 하는데 번거로워서요." 비록 200만원이나 더 썼지만, 이 정도 집이면 별 손해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빈집이고 임장 때 집 주변 상황을 봤던 터라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재매각 나온 건 그저 전 낙찰자가 너무 입찰금액을 많이 쓴 것이 분명했다. 그 회차 최저가가 600만원인데 최고가 880만원 훌쩍 넘겨 1200만원을 써냈으니 어찌 선뜻 매수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 집이 빈집인 데다가, 소유자와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략 난감, 명도 난이도가 꽤 있었다. 인도명령에 집을 강제집행해 넘겨받으려면 2-3달은 족히 걸렸다. 그런데 어찌어찌 명도 신공(?)을 발휘해 집을 바로 인수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집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고, 큰 문제는 없었다. 단지, 좀 작고 생활 오염물에 노후된 곳이 군데군데 있었을 뿐이다. 전용 8평, 공급 12평이었는데 실제 크기는 6-7평 원룸과 흡사해 보였다. 구조도 좀 특이해 베란다가 없고, 세탁실이 주방 앞 거실 공간에, 보일러실이 문밖의 별도 작은 문 안에 있었다. 다행히 끝집이라 유사시(?) 집 앞에서 복도 끝 공간까지를 베란다처럼 활용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경주 8평 경매 집 내부


집 인수와 동시에 우선 매물을 올렸다. 요즘은 '피터팬' 사이트 덕분에 개인도 부동산 부럽지 않다. 무료로 동시 3건까지는 직접 네이버 부동산에 매물을 올릴 수 있다. 괜히 부동산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매겨 거래하는 집의 가격과 수요 등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 관심자가 없으면 가격을 조금씩 내려 현실화하면 된다. 820만원에 낙찰받은 집을 과거 실거래가, 인근 시세 등을 고려해 1200만원 전세로 올렸다.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보름이 조금 지났을까. 문의가 왔다. 이것저것 집 상태를 물어보고 집 본 후 가능하다면 계약하고 싶다고 했다. 또 얼마 전에는 집 안 보고 바로 전자계약 하겠다는 사람까지 나왔다. 농사일로 싼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아무리 작고 부족해 보이는 집이라도 찾는 사람이 있다. 어느 정도 미리 임대 수요를 예측해 볼 수도 있다. 같은 유형의 작은 집이나 다른 대체제들을 네이버 부동산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지역이나 동네 명을 넣어 00 원룸, 빌라 등으로 검색하면 된다. 얼마 전 월세 계약을 마친 김천, 진주 같은 경우 원룸 임대 매물이 500-600개나 되었다. 하지만 유사 규모인 경주는 10여개 밖에 나오지 않다. 임대료도 높은 편이었다. 김천 집의 경우, 동네 주변만 해도 신축 원룸이 100여개가 넘었다. 보유 주택은 15평 구옥 빌라고 방 2개, 원룸 2배 크기였다. 그런데 6-7평 원룸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뜨린 후에야 가까스로 임차인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작은 경매 집들의 임대 수익률은 엄청나다. 김천 집은 투자금 대비 18%, 진주 집도 빨리 임대하려고 시세 대비해 많이 깎아줬음에도 23%의 연 수익률을 거뒀다. 경주 집도 200/10-12만원 시세로 월세 임대 시 연 수익률 17-20%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정도면 5년 내외에 원금 다 뽑고 공짜로 집 한 채가 생기는 수준이다. 전세의 경우 800만원 투자해 바로 그 50%인 400만원을 플러스피로 남길 수 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잘 매도하면 그 정도는 추가로 더 남길 것 같다. 그럼 투자금의 2배 800만원의 수익 목표 달성이 가능다.


그럼에도 2위와의 200만원 입찰 금액 차이는 크다. 서산 집을 2위와 2만원 차이로 낙찰받았으니, 경주의 경우 100배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바로 그것은 관점 차이였다. 경주 경매 집은 그 전회차를 보더라도 상위와 하위 입찰 금액 차이가 컸다. 관련 서류 열람 시 알다. 이전 회차 상위 3명은 1200만원에 이어 1100만원대가 2명 있었다. 하위 3명은 모두 600만원 최저가에서 몇 십만원씩 더 써냈다. 희한하게도 그 중간 가격은 없었다. 보통 몇십, 몇백만원 간격으로 최저에서 중간, 최고가가 쪼로로미 배열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600만원짜리 집의 가치를 보는 관점이 격렬하게 갈린 것이다. 그것도 무려 두 배나 차이 났다. 아마 하위 3명은 그 경매 주택 사정을  빠삭하게 아는 '내부자' 였을 가능성이 크다. 밀접하게 그 부근에서 생활하거나 그 주택에 사는 지인이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상위 3명은 외부인이거나 그 집을 다른 평범한 인근 유사 평수 아파트처럼 착각한 모방자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의 관점은 무엇이었을까. 애초부터 관심사가 조금 달랐다. 경주라는 여행에 홀리고 한달살기에 꽂힌 여행자였던 것이다. 여행자는 내부자와 외부자의 관점을 넘나든다.


여행자의 관점이란 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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