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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Nov 18. 2019

독립생활자로 홀로 선다는 것

'코끼리와 벼룩'을 읽고

"내가 독립한 첫해 크리스마스 파티는 단 두 명을 위한 만찬이었다. 나는 자유로웠지만 외톨이였다. 혼자 있음이 반드시 고독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소속감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벼룩은 무리 짓지 않는다. 더 큰 동물을 빨아먹고 살지만 그 동물의 내부에서 살지도 않고 살 수도 없다. 나는 독립한 첫해 각종 대회나 회의의 참석자 명단에 오른 내 이름 옆자리에 회사명이 쓰여 있지 않고 텅 비어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나는 어떤 회사의 대표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표하는 독립된 인격이었다. 그러나 연말 송년회 파티가 열리는 시점에 이런저런 부서의 초청장이 거의 날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얼마나 잘된 일이냐고 중얼거렸다. 싸구려 샴페인이 든 종이컵을 들고서 일부러 즐거운 척하지 않아도 됐다. 1년 내내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동료들 앞에서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서 있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런 초청장이 그리웠다. 그것은 사회적 배제에 의한 죽음이었다. 초청을 아예 못 받는 것보다는 초청을 받고 파티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 편이 나은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자문했다. 만약 내가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남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일까? 사내 파티가 실존적 고뇌를 가져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동체의 현대적 상징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그런 공동체가 이제 나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코끼리와 벼룩'(찰스 핸디, 생각의 나무) 3부 '독립된 생활', 6장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코끼리와 벼룩'은 1인 기업의 대부이자 원조 격인 찰스 핸디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코끼리는 대기업이고 벼룩은 프리랜스를 말한다. 찰스 핸디는 1981년 자유를 얻기 위해 대기업, 교수 등의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포트폴리오 인생을 시작했다. 포트폴리오 인생은 그가 주장한 이론으로 2000년에는 전일제 직장이 줄고 자영업자, 파트타임, 임시직이 절반을 차지할 거라는 예측이었다. 포트폴리오 일은 돈 받고 하는 일, 자원봉사, 공부, 집안일 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형태다. 요즘 중요시하는 일과 삶이 조화로운 새로운 생활 방식을 이미 오래전에 제시했던 것이다. 이 이론은 당시 황당무계한 예측으로 조롱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2000년에 이르러 영국의 전일제 노동인구 비율이 4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고, 1996년에 영국 회사의 67퍼센트가 1인 회사가 되었다니 찰스 핸디의 통찰력은 정말 알아줄 만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대기업을 자발적으로 퇴사하고 스스로 벼룩의 삶을 살아낸 것도 대단하다.


찰스 핸디가 첫 해 독립생활자로 느꼈을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나도 지난 3월 퇴사 후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 찾아오겠다는 안부와 정말 드물게 오래전 직장 상사와 조촐한 오찬을 가진 게 다였다. 물론 그런 게 부럽다는 얘기는 아니다. 회사 다닐 때 각종 회의다 팀원 관리다 대외행사에 얼마나 신경 쓸 일이 많았는가. 때론 그것 덕분에 사람 사는 맛을 느끼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 성향은 애초 독립 생활자에 가까웠다. 취미도 독서, 바둑, 수영, 혼밥 등 홀로하는 게 많다. 첫 직장에서는 꽉 짜인 대기업 시스템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에 지쳤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조직 속에 1인 기업처럼 일했다. 내가 속한 센터는 센터장과 나만 있는 독립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센터장은 주로 정무적인 역할을 많이 했고 실제 일은 거의 내가 혼자 알아서 했다. 연차가 올라가 센터가 아니라 다른 부서 중간관리자로 가면서 직장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나에게도 드디어 진짜 소속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일도 더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게 좋았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빅브라더 같은 직속 상사 2명을 연거푸 만났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는 직장생활은 숨이 막혔다. 관리자 일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회사만으로 채울 수 없는 가족의 필요도 더 신경 써야 했다.


찰스 핸디를 보면서 어쩌면 비슷한 게 많다고 생각했다. 피터 드러커, 필립 코틀러,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최고 경영 사상자 50인 중 한 사람에 꼽힌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는 것은 좀 염치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둘 다 자유를 얻기 위해 안정을 내팽개치고 새롭고 무모한 모험의 세계를 선택했다. 찰스 핸디가 혼자 있으면 전화를 걸기보다는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는 것, 초청하는 일은 사회적 에너지나 자신감을 필요로 해 잘 못했다는 것도 닮았다. 어떤 역할을 맡아서 연단 위로 올라가지 않는 한 평소에는 냉정하고 침착하며 수줍고 말이 없었다는 것도 그렇다. 기업 중역보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고 그 과정에서 타고난 교사의 재질을 발견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 활동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역할이 주어지고 필요하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 청년 때부터 열심히 훈련한 결과다. 첫 직장 동기회 회장, 교회나 선교회 청년회장, 단체모임 총무나 주최자, 강연자, 발표자 등의 다양한 역할을 즐겼다. 강의할 때 내 모습이 제일 행복해 보인다며 교사나 목사 같다는 말도 여러번 들었다.


1인기업 프리랜서로 독립한다는 것은 나 자신만으로 평가받는 벼룩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더 이상 기댈 코끼리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그 가치를 키워야 한다. 의무나 형식이 아니라 진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위해주는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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