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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Dec 23. 2019

브런치를 떠난다

브런치 한달 이용기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 11월 시작했던 달콤했던 브런치 작가 생활. 어언 한 달 하고도 20여 일이 지났다. 쓰려던 이용 일주일기는 어느덧 한달기, 두달기가 되었다. 걸음마를 떼는 유아기가 채 끝나기 전에 독립기를 맞다. 그만큼 글쓰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 기간 작가의 기분도 만끽했다. 미뤄뒀던 책 원고를 정리했고, 1일 1글 쓰기 목표도 얼추 이뤘다. 다 브런치의 힘이다.


비결은 함께 글 쓰는 사람들에 있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글 목록 자체가 도전이 됐다. 화려한 글 솜씨, 투박하지만 짠한 이야기, 참신한 소재들까지....... 은연중에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약간은 폐쇄적인 느낌 때문이었을까. 길고 적나라한 글을 내보이는 것도 그리 민망하지 않았다. 그중 가장 큰 차이는 '픽'이었다. 브런치는 초보 작가의 서툰 글도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켜 줬다. 처음 브런치 가입 후기에도 이런 내용이 끊이지 않았다. 글을 올렸는데 얼마 후 몇 천 클릭까지 조회수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모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이 땅에서 성공하려면 ''이 중요하다." 젊었을 때 이민 간 미국에서의 성공담이었다. 한 대기업 공장에서 성실히 일한 덕분에 관리자로 발탁돼 연봉과 경력 상승을 경험한 것이었다. 초보 작가 입장에서 브런치 글 노출 정책이야말로 이처럼 빠르게 자신을 알리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중에게 읽힌다는 것은 작가의 힘이다. 브런치에 입성하고 나서 인생 글 조회수를 경험했다. 블로그에서 고작 몇십 클릭이었던 조회수가 몇백, 몇천까지 올라갔다. 몇 개의 글이 그랬다. 브런치 메인화면 상단 글 모음에 올라간 것까지 치면 더 많았다. 얼마 전에는 더 생경한 경험을 했다. 글 조회수가 9만을 넘은 것이다. 3만 정도 가다 말겠지 했는데 3일을 신나게 달렸다. 인기글 가장 첫 번째 자리까지 갔다. 아마 이제까지 평생 적은 모든 글 조회수보다 많을 듯했다.


읽히는 글의 비결은 무엇일까


쓴 글들을 돌아봤다. 올린 57개의 글 중 절반은 브런치 가입 후 새로 썼다. 최상위 글은 이중 2개였다. 가족 게스트하우스 관련 이야기였다. 여기서 브런치와 독자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생활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 중 자극적이거나 교훈, 유용한 정보가 있는 글이었다. 상위 10% 6개의 글을 보면, 대부분이 수기나 에세이 종류였다. 1개 빼고는 2~4시간에서 하루 내 빠르게 쓴 글이었다. 3~4개 글은 어쩌면 좀 부끄러울 수도 있는 짠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글 분량은 대부분 3000자 내외였다. 가장 적은 분량은 1500여 자, 많게는 5500여 자도 있었다. 당기면서 편하게 읽기 좋은 글이 조회수가 높았다. 안타까운 것은 근 보름 넘게 고민해 쓰거나 나름 인생 콘텐츠라고 자부한 글이었다. 이런 글 4개가 10~20위권으로 밀려나 있었다. 읽히는 글은 쓴 시간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쓰고 싶은 글과도 차이가 있었다.


자신과 편집자, 독자가 원하는 글 간격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나는 자기 과거를 살리고, 현재를 비추며, 미래를 여는 인생 콘텐츠를 쓰고 싶었다. 가독성 같은 기교보다 붙이면 바로 책이 되는 진성 글쓰기를 원했다. 편집자의 일상 편집증, 대중성, 도덕적 틀을 넘고 싶었다. 독자들이 빠르게 고 소비하는 글보다 오래 남길 바랬다.


9만 클릭 조회수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몇백, 몇천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자 기반이 없는 초보 작가에게 글이 선택되어 읽힌다는 것은 분명 단비 같았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고 희망이었다. 덕분에 잘 들여다보지도 않던 스마트폰을 한 달 내내 달고 살았다. 길을 오가다가도 몇십 번씩 조회수 통계를 눌러봤다. 브런치 화면 새소식 칸에 뜨는 파란색 작은 점을 볼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과연 이 ''의 손길이 브런치 작가에게 구원일까, 특정한 틀에 가두는 해악일까?" 조회수가 만사는 아니었다. 높은 클릭률을 기록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브런치 경험은 강력한 글쓰기 동력이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가끔씩 눈 초점이 흐려지고 어질어질해졌다. (감기 증상인지 스마트폰을 많이 봐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글을 올리고 은근히 조회수를 기대하기도 했다. 야심차게(?) 올린 글이 관심 밖으로 사라지면 왠지 서운했다. 어떻게 높은 조회수를 올릴지도 괜히 신경 썼다.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의 흥분도 점차 가라앉았다. 조회수도 잔잔한 호수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도 과도한 브런치 집착에서 떠난다. 자신을 향한 글쓰기로 돌아간다. 그것은 '', 조회수 같은 반응에 일희일비 않는 것이다. 꿈이 일상이 되어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쓰는 것이다. 스스로를 매료시키고 독자들에게 증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나가는 9만 명보다 자기를 이해하고 원하는 1명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다. 쓰는 분량이 줄더라도 삶이 글이 되어 나오기 바란다.


인생 말년에 1인 크리에이터로 우뚝 선 박말례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북 치고 장구 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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