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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2. 행복의 의미

by 수지
서울과 모스크바, 600km 교환일기 첫번째 키워드는 '행복'입니다.


To. 수지
행복?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 불가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행복 하세요?" 라는 질문이 싫더라.왠지 모르게 «행복해?» 라는 질문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명암이 더 짙게 느껴지거든.


어릴 적부터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순적인 느낌이 싫었다. '행복' 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주는 따뜻함과는 달리,의문형태가 주는 느낌은 너무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삶에 대한 만족감이 드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행복한지 잘 안 묻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인지 스스로 "나 지금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할 때면 삶에 대해 불만족을 표현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힘듦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때문인지 혹은 스스로에게 투정부리기 싫어서 인지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인지 행복에 대한 물음을 멈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간 수지로부터 키워드를 받고 '행복'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봤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때, 잠자리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렸을 때,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양치를 하다가 문득. 커피를 마시기 위해 뜨거운 물을 올려 놓고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등.

틈틈이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본 결과, `행복`이라는 건 결코 감정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눈 떠 천장속에 오늘 펼쳐질 하루를 그리고, 이부자리에 누워 고생한 나 자신을 위로하듯 따뜻한 이불로 덮어주는 것. 치열한 일과속에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지 뭐' 라며 잠깐의 숨을 돌리는 시간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들(가족 뿐만 아닌 나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혼자 웃는 것. 양치를 할 때,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 속에서 지난 삶의 흔적을 찾는 것. 보글보글 끓는 물 앞에서 멍해진 정신이 `띵!` 소리와 함께 우주속에서 떠돌던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험 등.

위에 언급한 사소한 일상들은 굳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저 스쳐지나 가는 수많은 시간 속에 일부다. 일상이 특별해지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부터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행복'이라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매일 걷던 길거리도 누구와 함께 걷느냐, 어떤 마음인지에 따라, 그 길이 주는 느낌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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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스크바 거리를 걸으면


모스크바에서 생활이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느껴왔던 익숙함과 편안함이 여기에서는 모두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그 과정 속에서 깨달음과 배우는 재미가 있다. 책보다는 사람과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게 익숙했던 나로서 러시아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나에게는 너무 큰 재미로 느껴 지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생기게 된 것도 교환학생 할 당시에 만났던 `스타스`라는 친구의 덕이 크다. 운이 좋아 교환학생을 왔던 친구들 중에 유일하게 나만 러시아 사람들과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때 만난 룸메이트가 바로 스타스다. (친구와의 다양한 일화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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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룸메 스타스와


불안했던 마음을 전하는 불완전한 문장들의 공백은 따뜻한 홍차 한잔과 진심 어린 눈으로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의 마음으로 채워져 갔다. 25살의 수많은 밤은 나에게는 참으로 특별한 시간이었고,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참 힘들었던 시기에 왔던 모스크바였기에 그때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감정의 큰 축이 되었다. 지금은 비록 삶에 대한 책임과 무게로 예전과 같이 많은 시간을 나의 사람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힘들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시간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 않을까.


글을 쓸 때만 하더라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불편했는데 글을 다 쓰고 생각해보니 마음이 참 따뜻해지네. 어쩌면, 나 자신도 행복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수지, 너 덕에 앞으로 더 행복해지겠다.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시간들이 떠오르더라. 나는 참 운이 좋구나,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네 � From.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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