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Moscow
서울과 모스크바, 6000km 다이어리 두 번째 주제는 '대화'입니다.
To. 수지
알고 보면 불곰국에 있는 남자들도 대화할 때 낭만이 있다니까?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그런 걸 아는 많은 친구들이 묻는다. 하필이면 왜 그 추운 나라 러시아에서 살고 있냐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당연히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역시 "러시아에 사는 게 좋으세요?" 다. "당연하죠."라는 간단한 답에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국인인 너는 왜 러시아에서 사는지 모르겠다며. "뭐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요"라고 답하며 머쓱하게 웃곤 하지만 내가 러시아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러시아 특유의 분위기, 미세먼지로부터의 해방(비염이 있는 나에게 정말 지상낙원),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겨울 풍경 등. 하지만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러시아들만의 '정서'다.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다. 그래서일까.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서양으로 구분되지만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양과 참 많이 닮은 점이 많다. 예컨대, 러시아어에도 존댓말이 있으며 웃어른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다. 식사를 할 때나 어떤 순서가 있을 때 어른부터 챙기는 문화도 참 인상적인데 이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러시아에 사우나를 하는 문화가 있다. 100도가 넘는 습식 사우나에서 15-20분간 대화를 하고 밖으로 나와 눈에 뛰어들거나 찬물을 들이붓는다. 그리고 잠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이를 2-3차례 반복한다. 사우나를 마무리할 때는 자작나무 잎사귀를 이용해 마사지를 한다. 상체와 하체로 구분하여 온 몸에 강한 열기로 신체의 혈액순환을 강하게(?) 돕는 마사지다. 가장 연장자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가장 어린 사람이 받는 순서다.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은 대체로 경험이 많거나 어린 사람이 한다.
6년 전 러시아 친구 스타스 가족의 별장 (다차라고 불리는)에 초대받았다. 때는 한 겨울,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스타스 아버지와 이웃 주민들과 함께 사우나를 했다. 사우나에서 몸을 지질 때 왠지 모르게 지면 안 되겠다는(?) 한국인 특유의 승부욕이 앞서 버티고 있는데 스타스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나를 데리고 나오더니 눈 속에 던졌다. 그러고 나서 찬물을 머리에 끼얹어 주는데 ‘이게 러시아 구나’ 새삼 깨달았다. 몸의 열기와 거리의 한기 때문에 몸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참 인상적이었고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후다닥 들어와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이를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나와 스타스의 마사지 차례가 됐다. 스타스가 자작나무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함께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잎사귀는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남았다.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누우라고 하는 스타스에게 “이거 벌 받는 거 아니지?”라고 물었더니, “너 맞는 거 좋아하잖아”라는 대답에 서로 엄청 웃었던 적이 있다.
스타스와 함께 살 때,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스타스는 여러 차례 나에게 ‘친구’에 대해 강조하며 되물은 적이 있다. 러시아에서 друк드룩 (친구) 은 미국에서 말하는 friend 와 큰 차이가 있다며 ‘한국에서 말하는 친구는 프렌드냐, 드룩이냐’는 스타스의 물음에 ‘한국에서 말하는 친구는 friend 의 의미로 자주 쓰인다’ 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타스는 ‘러시아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너에게 ‘친구’가 있는 건 말이 안 된다며 ‘друк(드룩:친구) 가 아니라 ‘знакомый(즈나꼼믜이:지인) 이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뼈 때리는 스타스에 말에 왠지 모르게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러시아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던 터라 러시아에서 말하는 우정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몰랐다. 1년간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스타스와 헤어질 때서야 러시아에서 말하는 ‘친구’의 의미에 대해서 깨달았다. 러시아에서 ‘친구’ 라 함은 어떠한 셈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같은 맥락에서 가끔씩 교환학생 때 러시아어 선생님께서 수업 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교과서에서 남녀가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는 내용의 지문을 읽으시다가 우리에게 러시아에 정신병 환자가 몇 %가 되는 줄 아냐며 물었다. 추운 날씨와 백야 현상 등으로 적어도 30-40% 이상일 거라 생각한 우리는 연신 높은 수의 %를 말했으나 선생님은 10%의 미만이라며 회심의 미소를 뗬다. 미국과 달리 정신병원의 수도 그리 많지 않다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왠지 모르게 승리의 여신 미소가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선생님은 왜 그렇게 낮냐는 우리의 물음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우리에게는 친구가 있습니다. 슬플 때나 힘겨울 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마음의 병은 친구와 함께 나누면 됩니다.
러시아 사람은 약과 치료에 에 의존하지 않아요.
라는 선생님의 답변에서 왠지 모르게 스타스가 나에게 친구의 의미를 되묻는 모습이 오버랩됐다.
생각해보면 러시아 사람들만큼 수다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거 같다.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어김없이 공원을 거닐고 뜨거운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한다. 한번 시작한 대화는 밤새 이어지고 긴 밤의 끝은 대화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내가 러시아와 잘 맞는지 모르겠다.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땀 흘리며 공차는 것보다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더 좋아했고, 대학교에서 가서도 술 마시는 것보다 카페에서 대화하는 게 더 재밌었다.
수지가 칭찬해준 대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는 나름 준비된 굿 리스너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누나들로부터 특훈(?)을 받은 조기교육 때문일까?) 나에게 있어서 대화는 다른 의미에서 '독서'에 가깝다. 활자를 보며 문맥을 이해하는 바와 같이 대화를 할 때 사람의 눈을 통해 맥락 그 너머의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단어로 전하는 못하는 미묘한 감정은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감정의 찰나는 미세하게 얼굴 근육에 드러나고 그 변화 속에서 화자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느끼고 각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상황에 다르게 반응하는 자체가 나에게 큰 재미다.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공감할 만한 감정선을 발견할 때면 왠지 모르게 짜릿하기도 하다. 그러나 러시아에 와서 느낀 게 하나 있다면 나는 '굿 스피커'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가 있는 외국에서 살 때는 그 어려움은 배가 된다.
한국어에는 '눈치'라는 단어가 있다. 무언가를 하기 싫거나 피하고 싶은 상황에서는 나의 감정을 최대한 돌려,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나름 배려라고 생각했다. 거절하거나 서로 다른 의견으로 대립을 하는 건 관계를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성격이 아니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머쓱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 속으로 애태운 적도 참 많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진짜 '배려'라는 게 뭔지 알아간다. 깔끔하게 나의 의견을 전달해서 상대방이 스스로 말의 의미를 찾는 게 마음과 시간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 배려라는 것을.
러시아에 와서 러시아 사람들 간 대화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참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상대방이 누구인지 간에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에 한번 놀라고 상대방은 그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에 더 놀랬다. 물론 과정이 항상 평화롭지는 않다. 가열될 만큼 가열되다가 펑하고 터지는데 신기한 것은 그때의 감정은 다음까지 묻어 두는 법이 없다.
어느 늦은 저녁 밤 스타스와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할 때였다. 스타스에게 러시아에 와서 이런 광경에 대해 참 재밌다고 말하며 나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스타스는 무엇이 겁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물었다. 나는 그저 대립하는 게 싫다고 말하자 스타스는 '그건 대립이 아니라 대화' 라며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그걸 왜 대립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때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재미를 느꼈던 부분을 한편으로는 겁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참 조심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나는 한국 사람일 뿐이지 내가 한국을 대표하지 않고, 내가 비록 러시아에 살고 있으나, 내가 알고 있고 체험한 러시아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스타스에게 이에 대해 얘기하며 한국에서 대화를 할 때 주로 '어른'의 말에는 '토'를 달지 않는 게 예의라고 얘기하자 스타스는 이해할 수 없다며 재밌는 말을 했었다.
순두부 같은 성격 때문에 직장에서도 당연히 어려움을 겪는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에 무리하게 일을 맡는 경우가 있고 생각해온 바와 다르게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상사에게 내 의견을 전달하지 못해 속만 끓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나의 성격을 아는 사수는 농담으로 "상호야, 상호적으로 소통 좀 하자"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시곤 한다.
사실 글의 마무리에서 '이랬던 내가 이렇게 변화했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대화에 있어서 잘 듣는 것만큼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갈등과 충돌이 항상 불편한 것이 아닌 관계의 빈틈을 채워주고 더욱 굳건하게 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어가 도움이 된다. 부족한 러시아어 실력 때문에 돌려서 말하지를 못한다 (슬픈데, 웃기다…). 그래도 뭐, 부족함을 알고 개선해 가는 모습이 나다운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핫.
나이가 더 많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어른이면 오히려 그걸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어른과 대화에서 "아니요"라는 답변은 왠지 모르게 금기시되어 왔다. 이렇게 살아온 게 습관이 된 것인지, 이를 빌미로 핑계를 삼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쓰다 보니 수지 너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나 경험(?)들이 있을지 궁금하네.
어디 한번 썰좀 풀어주시죠.
From. 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