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에게 구찌백 사다 준 그 남동생이요.
나에겐 남동생 둘이 있다. 밑으로 줄줄이 있다고 해서 '줄줄이 소시지'라고 부른다. (애칭)
소시지 1은 6살 차이가 나고 소시지 2는 15살 차이가 난다. 이렇게 나이 차이를 말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 남매는 흔해도 드문드문 자식이 있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신기해한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데, 남들은 얼마나 더 신기할까.
지난 4월 늦은 밤, 소시지 1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변수가 생겼어. 나 학원 일정이 생겨서 서울에 빨리 가야 할 것 같아. 빠르면 2주 뒤쯤에."
청천벽력. 이거 정말 아닌 밤 중에 홍두깨 아냐. 후.
동생의 일정에 변수가 생겼다는 건, 동시에 나의 1인 가구 라이프가 곧 종료된다는 소리였다. 학원을 다닐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급 전개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출가한 뒤로는 가족과는 함께 살진 않았어도 항상 집을 셰어 하면서 살았다. 취업을 위해 상경하고 나서도 집에 하우스메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지낸 건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행복감 max로 독립생활을 하였던 나였기에 뜻하지 않은 소식에 마음이 척 내려앉았다.
그런데 뭘 어째. 그냥 같이 살아야지.
그렇게 살림을 합쳤다. 반려 휴먼과.
반려견, 반려묘처럼 동물에 많이 쓰이는 이 '반려'의 뜻은 '인생에 짝이 되는 동무'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뜻을 제대로 알고 나면 왜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에게 '반려'를 붙이는지 알겠다. 그래서 나도 붙여보기로 했다. 반려 휴먼. 어엿한 성인 남성인 동생을 내가 키우지도 않고, 키울 수도 없지만! 그래도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나의 싱글라이프에 짝이 될 동무가 될 테니 말이다.
남동생을 내 집에서 지내도록 하기로 결정하고 엄마는 내게 “왜 네가 쟤(남동생)를 책임지려고 하냐”며 걱정 어린 잔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엄마, 나는 책임질 수도, 책임질 생각도 없어. 내가 꽤 고민해봤는데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게 확실해. 이 마음은 너무 확신이 들어서 엄마에게도 자신 있게 말하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며칠 뒤 엄마도 “그럼 그렇게 해보자.” 며 우리의 동거에 염려가 아닌 응원으로 적극 협조를 하기로 했다.
나름의 물밑작전을 펼치며 누나의 마음이 분주할 때, 동생은 큰 용기를 내어 “누나, 나 혹시 누나랑 같이 살아도 되나?”라고 요청했다. 내 계획이 먹혀 들어가기도 전에 동생이 먼저 손을 내밀어버린 상황이라니. 감격이었다. 마치 우리가 같이 살 운명이었다는듯이 모든 것이 착착 맞아 들어갔고 나의 결정은 점차 강한 확신으로 점철되어 갔다.
거의 10년 넘게 따로 살아온 남매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기대하기에 충분한 이유에는 바로 저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남동생과 살림을 합친 지 이제 막 한 달. 꽤 재미나게 지내고 있다. 서로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죽고 못 사는 오누이처럼 애틋하게도 지낸다. 혼자 살 때처럼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순 없지만 대신에 같이 살 때의 유익을 충분히 누린다. 우린 앞으로 어떤 삶을 공유하게 될까. 정말 서로의 반려 휴먼이 될 수 있을까. (참고로 쇼윈도 남매 그런 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