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씨걸 Aug 11. 2022

크로플을 먹으면 행복해질까

그래서 먹었냐고요?

 '운동하면서 잡생각을 집어치우자 vs 아, 오늘은 위로가 필요해..'


내적 갈등이 대격돌하던 퇴근길. 지영과 눈이 맞았다. '오늘 번개 콜?' '콜!'

아무래도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아우프글렛에 갔다. 무려 크로플의 시초라는 아우프글렛. 마침 회사 근처에 새로운 지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기 언제 한번 가야지' 했던 참이었다.


크루아상과 와플의 합성어라는 크로플. 빵이라면 환장하는 빵순이의 넘버원은 언제나 클래식한 크루아상인데 그걸 와플기로 눌러서 아이스크림을 올렸다? 거 참, 참기 힘든 조합이다. 크로플의 등장으로 지난 1년간 대한민국 디저트 트렌드는 크로플이 전부 휩쓸어서 카페마다 없는 집이 없었을 정도다.  그럼 뭐해,  지난 반년 이상을 꼬박 다이어트에 바친 나에겐 크로플은 언제나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그걸 개발해낸 집이 회사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와버렸다고? 그건 얘기가 또 다르지.


아우프글렛 이야기를 지영에게 얼마나 여러 차례 했는지 모르겠다. ',  정말 크로프 너무 먹어보고 싶은데, 여기에 오픈했대.' 라며. 결국 가지 않을테지만 항상 마음 한편에 언젠가 먹으리라 생각하면서. 마치 신화  동물 대하듯 크로플 이야기를  때마다 천사같은 지영은  "언제  같이 가요."라고 말해주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


이건 아우프글렛 아니고..

먹을 생각에 들떠서 연남동의 골목을 걷는 발걸음 이 너무 가벼웠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요즘 제일 핫하다는 집에 연남동에 문을 열었으니 웨이팅은 당연했고 우리 앞에 총 다섯 팀이 대기 중이었다. 아직 저녁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처럼 바로 디저트를 먹으러  사람이 많았는지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매장이  컸는데도 모두 만석이었다. 회전율이 빠른 식당과는 다르게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곳이다 보니  팀이 들어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팀이 들어갔을 무렵, 아직 우리 앞에  팀이나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로플을 먹으면 행복해질까?

"잠깐은 행복하겠죠? 그런데  괜찮아요."
지영이 괜찮다고 하니 마음은  동요했다. 지영의 멘트가 먹으면 먹는 대로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려 괴로워할 나를 배려한 멘트일 수도 진심으로 괜찮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느 쪽이던 크게 상관이 없었다. 나는 이미 크로플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쉬워, 오기를  부려야 할까 고민 중이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 바로 악쿠마.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듣고 한소리 제대로 듣고 나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지금 인생이 고달파서 뭐라도 입에 넣어야겠는데 야단 쳐주세요ㅠㅠ"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저 지금 크로프 집 앞에서 웨이팅 하고 있어요."
"그냥 집 가서 자요. 정 못 참겠으면 닭가슴살이라도 데우던가."


어휴. 냉정한 사람. 선생님의 차디찬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통화하는 나를 지켜보던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흔쾌히 집으로 그냥 돌아가도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주었다.


다음날 센터에서는 고중량의 하체 운동을 혼자서 해내는대도 힘든 줄을 몰랐다. 선생님 없이 혼자서 운동하는 날은 한계치가 도달했을  타협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숨이 떡끝까지 차오르기 직전까지만 운동을 한다. 그런데  날은 온몸이 땀에 젖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어제 크로플을 이겨낸 뿌듯함에서 오는 열정 때문이었을까. 어우야. 정말 먹었으면 어쩔 뻔했어.


사실, 먹어도 된다. 그거 한번 먹었다고 당장 엄청나게 살이 찌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타협은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워진다는 점. 그리고 내 몸이 기억하는 당의 맛은 그 두 번 세 번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애초에 여지를 주지 않는 편이 심신에는 훨씬 이롭다.


크로플을 먹으면 행복해질까? 아니다. 물론 먹는 그 순간엔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날 나에게 크로플이 필요했던 이유는, 비단 디저트의 단 맛이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크로플을 먹는다고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순 없으니까.


근데 나중에 아우프글렛 갔어요. 쏘 해피!


( 지금은  먹어요! 여전히 최애 디저트 >_<)

매거진의 이전글 첫 러닝 트랙 데뷔 성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