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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씨걸 Aug 22. 2022

인바디 대참사

회원님한테 실망했어요

바디 프로필을 준비한 지 한 달이 되었고, 그 사이엔 여러 일들이 있었다.  남은 기간이 너무 촉박하여 결국 일자를 한번 변경했고, 촬영을 할 때까지 PT 수업을 연장하기도 했다. 일자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운동 강도는 더 세지고, 식단은 점점 더 타이트해져서 체중 감량은 순조롭게 진행... 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곧 인바디를 측정을 앞두고 있었기에 더 타이트한 관리를 했다. 아침에 수업을 하면 저녁에 한번 더 배운 것을 복습하고 유산소까지 하루에 2번씩 운동하는 루틴으로 어느덧 한 달을 살았을 때쯤엔 나는 이미 아침운동 - 출근 - 저녁 운동 이 말도 안 되는 미라클을 몸소 실현해내는 K-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날이 갈수록 체력이 좋아져 매일같이 고강도 운동을 수행해도 힘든 줄을 몰랐지만 한 편으로 수면부족과 신경성으로 인한 두통, 소화불량 증세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측정까지 하루 전. 체력이 안 되겠었는지 정말 운동을 하기 싫었는지 20분 정도 타던 사이클에서 내려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안녕히 계세요."
매니저 : "회원님, 내일 인바디 잰다면서요~ 후기 기다릴게요."
다른 트레이너 : "벌써 가세요? 더 열심히 하셔야죠."


'후, 힘들어. 오늘은 정말 가야 할 것 같은데..' 헬스장 문을 박차고 집을 향했다. 그리곤 "오늘 좀 쉬어요" 대신 '내일 기대한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결국 200m도 가지 못한 채 서 뒤돌아 다시 센터로 와버렸다. 재등장이 머쓱해서 손가락으로 브이 한 번 만들고는 있던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발을 구르며 다음날을 대비하고 나서야 안심하며 귀가를 할 수 있었다.


측정의 날이 밝았다. 긴장 상태로 잠이 들어 그런지 5시부터 눈이 떠졌다. 아침 6시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부리나케 센터를 향했다. 지난 3주간 인바디는커녕 체중계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살이 빠졌는지는 오로지 거울로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숫자로 결과를 직면한다는 게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 



'어라? 나 지금 1kg도 안 빠진 거야?'


1kg 도 안 빠진 건 물론이거니와 체지방률은 1.4%가 늘었고, 근손실까지. 결과는 말 그대로 처참. 프린트된 인바디 결과지를 뚫어지게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 때리고 앉아있다가는 선생님이 보기 전에 또다시 사이클 위에 올라탔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할 겨를이 있기는커녕 단지 충격적인 결과에 압도되어 사이클 위에 앉은 채로 10분이 지났을까. 이대로는 더 이상 운동을 하는 건 무리였기에 주섬주섬 짐을 쌌다. 그리고 내가 보지 않은 사이 뒤늦게 나의 인바디 결과를 확인한 선생님이 센터를 나서는 내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나왔다고 집에 간다고? 아침 여섯 시부터 와서?"
"네.."
"문제가 뭔지 같이 이야기해보고 고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결과 아쉽게 나왔다고 포기한다고요? 솔직히 이번엔 회원님한테 실망했어요."


실망. 절망에 이어서 실망. 망. 망. 망. 비수를 꽂는 말이었지만, 선생님 말이 맞았다. 뭐가 잘못됐는지 고치면 되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듯한 지난 3주간의 노력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서 어쩔 줄을 모르고만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문제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늘 그랬듯 식단이 문제였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적게 먹어야 해?' 하는 억울한 마음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먹었던 음식들을 살펴보면 약속이나 소소한 일탈이 많았다. 그래 봤자 브런치카페에 가서 샐러드를 먹는 것이 전부라 하더라도 다이어트 정체기 때는 먹는 양을 먹는 양을 조금 더 줄여보거나 운동량을 늘려서 뭐가 문제였는지 원인을 찾는 실험을 해봐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운동량을 늘렸기 때문에 결국엔 문제는 식단이었다.


"회원님, 이제부터 먹는 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찍어서 보내요."


2시간을 꽉 채워 운동을 마치며 집에 돌아가는 길, 다시 힘을 내보기로 결심한 동력은 어디서 나온 건지 생각했다. '실망'. 바로 이 두 글자였다. 누군가 내게 실망했다는 말이 이렇게 절망적인 말이었던가. 무엇을 위해 운동을 하는 걸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운동하는 걸까. 당장 답할 수 없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의 끝에 내가 내린 답은, 그저 오늘 포기하지 않은 나를 애써 칭찬하기. 꼬리를 무는 질문들엔 당장 답할 순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건 바로 답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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