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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빛 속의 기억, 그리고 너

by hongrang

20대의 설레던 순간들이 가끔 아침 공기 속에서 떠오를 때가 있다.

깊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의 온기를 느끼던 시간들. 조심스럽게 등을 쓸어내리고,

어깨에서 허리, 그리고 손끝으로 닿는 모든 감각이 선명했던 그 순간들.

피곤함보다는 떨림이 컸고, 밤새 이어진 감정의 여운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놓지 못했다.

그렇게 새벽이 지나고, 어스름한 빛이 방 안을 채울 즈음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이미 아침이었다.

새벽에 잠들었던 탓인지 해는 훤히 떠 있었고, 방 안을 가득 채운 따뜻한 햇살이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내 방, 내가 늘 보던 책장과 회색 침구, 하얀 벽.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같은 공간인데, 어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빛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 때문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 살짝 흘러내린 내 셔츠, 맨발로 바닥을 딛는 조심스러운 움직임.

그녀는 총총총 걸으며 아침의 햇살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무심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창밖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어쩜 저리 아름다울까.

그녀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반짝이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그녀는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할 뿐인데,

내 시간과 공간을 빛내는 요정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날 아침의 감정은 재현할 수 없다.

하지만 문득 떠오를 때마다 그 순간의 따뜻함이 마음을 감싼다.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그 빛 속에서 누군가가 내 공간을 채워 준다면,

나는 아마 다시 20살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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