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같은 식당
가을이 되면 공기는 조금 더 깊어지고, 마음은 이유 없이 풍성해진다. 천고마비라는 말이 계절을 설명하지만, 사실 나에게 이 말은 ‘요리를 꺼내오게 되는 계절’을 뜻한다. 먹는 것을 좋아해 시작된 취향이 어느새 만드는 쪽으로 옮겨졌고,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은하수 식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은 세계를 운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은하수 식당의 진짜 계절은 따로 있다. 초여름에서 초가을까지.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마다 흙내가 묻어나고, 햇살이 채소의 결을 이리저리 바꿔 놓는 그 시기. 텃밭의 숨결이 가장 가득한 계절이다. 손을 조금만 뻗어도 바질과 루꼴라가 향을 터뜨리고, 방울토마토는 햇볕을 잔뜩 머금은 채 반짝인다. 재료들이 ‘지금이야’ 하고 말을 걸어오는 시기. 그 신호에 맞춰 식당이 열린다.
은하수 식당은 밤에만 문을 여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심야식당이라는 표현도 조금은 비껴간다. 나는 특별한 메뉴를 내걸지 않기 위해 그 단어를 차용했을 뿐이다. ‘정해진 메뉴가 없는 식당’, 그게 은하수 식당이라는 뜻이다. 재료가 결정하고, 손님이 결정하고, 그날의 공기가 결정하는 식당. 그래서 어떤 날은 샐러드와 리소토가 이어지고, 어떤 날은 과일 디저트와 식전주 한 잔이 중심이 된다. 나는 그 흐름을 듣고 따라갈 뿐이다.
식당은 예약제로 열리지만, 사실 예약은 형식에 가깝다. 마음속에서 ‘열 때가 되었구나’ 하는 작은 신호가 들릴 때,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무슨 맛을 요즘 좋아해?”, “가벼운 저녁이야? 아니면 천천히 오래 머무는 밤이 좋아?”
이 질문들을 주고받는 시간은 거의 디자인 작업에 가깝다. 색을 고르고, 형태를 배치하고, 질감을 조화롭게 하는 과정. 친밀한 마음을 기반으로 한 ‘먹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전문 셰프가 아니기에 더 공을 들인다. 채소를 다듬고, 육수를 고르고, 허브를 씻고 말리는 시간이 몇 시간씩 걸린다. 2~4인 기준으로 한 테이블을 준비하는 데 하루가 꼬박 지나간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정작 테이블을 세팅하는 순간마다 마음이 조용히 정돈된다. 내가 준비하는 건 음식이 아니라 ‘그들에게 어울리는 순간’이라는 걸 점점 알게 된다.
은하수 식당은 이타적인 마음으로 연다. 누군가 지친 목소리를 들었을 때,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을 때, 혹은 그냥 그 사람이 웃는 모습이 생각날 때. 그런 마음이 들면 자연스럽게 부엌의 불이 켜진다.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지만, 결국 가장 깊게 채워지는 건 나 자신임을 알면서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은하수 식당을 조용히 연다.
초여름의 숨결이 머물다 가는 저녁에도, 초가을의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오후에도.
이 식당은 요리를 파는 곳이 아니라 순간을 준비하는 곳이기에.
메뉴는 계절이 쓰고, 시간은 그릇이 되며, 마음이 마지막 향기를 더한다.
그렇게 은하수는, 늘 그렇듯 흐르고 머물고 다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