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X N1-001
2000년 8월, 교세라는 사진 업계의 관심을 모으며 콘탁스 N1을 발표했다. 콘탁스는 고성능 35mm 자동초점 SLR 카메라로, 프로 사진가와 아마추어 모두를 겨냥한 제품이었다. N1은 다수의 혁신적인 기능을 최초로 탑재하여 출시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9월부터 1700달러에 판매될 예정이라는 소식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애호가들에게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카메라는 5점식 광역 대각선 초점 시스템, 정밀 포커스 ABC(Auto Bracketing System), 그리고 옵션으로 제공된 LCD 뷰파인더 등 당대의 첨단 기술을 자랑했다.
그러나 콘탁스라는 브랜드는 디지털 시대에는 낯설 수 있다. 콘탁스는 필름 카메라 전성기의 상징적인 브랜드였지만, 오늘날의 사진가들 중 일부에게는 그 명성이 퇴색한 듯 보인다. 그렇지만 콘탁스의 역사는 매우 깊고, 기술적 혁신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작은 1932년 ‘Contax I’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자이스 이콘(Zeiss Ikon AG)에서 제작된 이 카메라는 고급 렌즈와 견고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쌓았으며, 이후 수십 년간 콘탁스는 고급 카메라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69년 ‘Contarex SE’ 모델을 마지막으로 자이스 이콘에서는 더 이상 콘탁스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분단과 자이츠의 동독·서독 분리, 그리고 미국의 정치적 압력으로 자이스 이콘의 규모가 축소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콘탁스의 부활은 일본 야시카(Yashica)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1974년, 두 회사는 포토키나에서 Contax RTS I을 발표하며 다시금 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었다. RTS 시리즈는 고급 SLR 카메라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콘탁스는 다시 한번 필름 카메라 시장에서 주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83년 야시카의 부도로 인해 그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이때 교세라(Kyocera)가 야시카의 광학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콘탁스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교세라에서 생산된 콘탁스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의 전성기를 함께하며 많은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세라는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2005년 카메라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다. 오늘날 ‘Contax’라는 브랜드 명칭은 독일의 Carl Zeiss 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콘탁스 N1은 야시카와의 협력으로 탄생한 수많은 모델 중 하나로, 이 중에서도 플래그십 모델로 자리잡은 카메라다. N1은 정밀한 초점 기술과 다양한 기능으로 주목받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자식 카메라들의 특성상 유지 관리가 까다로워졌다. 깨끗하고 오류 없는 상태의 N1을 찾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필름 카메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콘탁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콘탁스 645와 같은 중형 카메라는 오늘날에도 몇백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핫셀블라드(Hasselblad)**와 함께 중형 고급 카메라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콘탁스 645는 그 매력적인 디자인과 성능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로망을 자극하고 있다.
콘탁스의 렌즈는 **칼짜이스(Carl Zeiss)**와의 협력으로 제작된 것이며, 특히 붉은색 ‘T’ 마크로 잘 알려져 있다. 칼짜이스 렌즈는 선명한 샤프니스와 절제된 채도로 유명하다. 콘탁스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가들은 칼짜이스 렌즈만이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을 찾는다. 그 특유의 색감과 섬세한 디테일은 사진에 깊이감을 더해주며, 콘탁스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에서 콘탁스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 역사적 가치와 기술적 유산은 여전히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필름 카메라가 점점 더 희소해지는 시대에 콘탁스 N1은 그 정점에서 빛을 발한 모델로 기억되며, 필름 카메라가 지닌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상징적 제품으로 남아 있다.
함께 구매한 24-85렌즈는 82mm대구경으로 초음파 모터를 채용하고 있지만 대구경렌즈의 유리알 무게때문에 초음파모터가 고장나는 개체가 많다 물론 리페어 조차 쉽지 않다.
콘탁스 N1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동경해왔던 카메라였고, 이제 그 꿈이 실현된 것이다. N1을 받아들고 나니 곧바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리하여 지인들과 함께 동해로 떠나는 일정이 잡혔다. 목적지는 바닷가, 바람과 파도, 그리고 콘탁스 N1과 함께할 사진의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바닷가는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파도는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었고, 바다의 모습은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했다. 그런 날씨는 사진을 찍기에 완벽했다. 흔들리는 나무와 파도의 물결, 맑은 하늘과 선명한 구름, 모든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콘탁스 N1과 칼짜이스 렌즈는 그 순간들을 정확하게 담아냈다. 촬영 후 현상을 받아들고는, 몇 번이나 그날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그 순간을 다시 불러왔다.
물론, 그날 날씨가 워낙 좋았던 것도 사진이 선명하고 또렷하게 나온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도 칼짜이스 렌즈의 선명함과 공간감은 그 감동을 배가시켰다. 이 렌즈가 보여주는 탁월한 샤프니스는 마치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명확함을 선사했다. 코닥의 영화 필름과 칼짜이스 렌즈의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한 하모니였다. 깊이 있는 계조 표현과 차분한 색감은 바다의 모든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그날의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필름 사진만이 줄 수 있는 그 고유의 따뜻한 느낌이 사진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콘탁스 N1은 단순히 고급 카메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기계적 완성도는 사진가로 하여금 오로지 파인더 속 세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조작이 복잡한 카메라는 종종 창의적인 연출에 방해가 되기 마련이다. 촬영자가 카메라의 성능과 기능에 신경을 쓰는 순간, 시각적 구상과 장면의 연출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N1은 나에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도록 해주었다. 마치 나의 의도와 기계가 하나가 된 듯, 손끝에서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순간을 포착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과정을 즐기며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플래그십 카메라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었다.
N1을 단순히 ‘추억의 카메라’로 치부하기에는 부족하다. 캐논의 1 시리즈나 니콘의 F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당대 최고의 카메라 중 하나였고, 그만큼 촬영 경험 역시 대단했다. 이 카메라는 그저 필름 카메라 시대의 유물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기능적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기계적 성능에 대한 나열을 넘어, N1은 나에게 로망의 실현이라는 더 큰 의미를 지녔다. 가난한 디자인 학도 시절, 내 손에는 언제나 저렴한 삼성 미놀타 카메라가 있었고, 콘탁스는 그저 먼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 같은 학생이나 아마추어 사진가는 물론, 심지어 많은 프로 사진가들조차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고급 브랜드였다. 그런 콘탁스를 내 손에 쥐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지금도 이 카메라가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그 어린 시절의 로망이 현실이 되었다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종종 콘탁스 N1을 손에 들고 파인더를 들여다본다. 촬영할 장면이 없더라도 셔터를 눌러보며 그 감각을 느낀다. 공셔터를 날리며 머릿속으로는 새로운 여행지와 찍고 싶은 장면들을 구상한다. 콘탁스 N1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도구를 넘어, 나에게 여행의 모티베이션이 되었다. 이 카메라는 언제나 나를 떠나고 싶게 만들며, 새로운 풍경과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게 만든다.
콘탁스 N1과 함께한 시간들은 단순한 촬영의 순간이 아니라, 오랜 꿈이 실현된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여전히 나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장면을 찾아 떠나도록 나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