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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 통조림 카메라

Konica BIG MINI - 002

by hongrang

필름 카메라는 나에게 단순한 촬영 도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담는 창이었다. 특히, 코니카 빅미니 A4는 나의 첫 필름 카메라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모델이다. 1989년에 발매된 이 카메라는 빅미니 라인업의 시작을 알리는 모델로, BM-101이라는 본래 명칭을 가지고 있다. 35mm f3.5 렌즈를 탑재한 이 작은 카메라는 후속 모델인 201, 301과 같은 결과물을 내지만, 첫 모델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특히, 101 모델에만 존재하는 클로즈업 버튼은 단순한 차이점 이상의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빅미니와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중국 상하이에서 주재원으로 일할 때였다. 생경한 도시에서의 생활은 내게 새로운 취미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던졌다. 출사는 내 유일한 탈출구였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걸으며 상하이의 이국적인 풍경을 담다 보니, 그곳에서 우연히 중고 카메라 시장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필름 카메라의 황혼기를 지나가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당시 필름은 점점 사양길로 접어들고, 디지털 SLR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상하이에서는 여전히 필름 사진 문화가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카메라가 바로 후지필름의 티아라와 코니카 빅미니였다.


그 시절에는 그저 호기심에 손에 쥐었던 이 카메라들이, 10여 년이 지나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한때 저렴한 중고 필름 카메라였던 빅미니와 티아라는 이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인기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2024년에 다시 만난 빅미니는 가벼운 무게와 빠른 반응 속도로, 일상의 순간을 기록하는 최고의 동반자가 되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바디와 필름 특유의 감성적인 색감은, 디지털카메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빅미니는 나를 다시 필름 사진의 세계로 이끌었다.


틱 지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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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021805340023240219.jpg 안동역 택시승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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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그랬다. 아주 밝은 가을날, 겨울을 앞두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나는 무심코 빅미니를 주머니에 넣고 나섰다. 이 카메라는 일부러 챙기는 것이 아니라, 늘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도구에 가깝다. 출사라는 거창한 목적 없이도 가볍게 들고나갈 수 있다는 점이 빅미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길을 걸으며 나는 카메라를 대기 상태로 두고, 마치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듯 거리를 걸었다. 지인의 가벼운 발걸음, 스쳐 가는 사람들, 가을빛에 반짝이는 풍경들이 스냅사진처럼 내 눈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만약 내가 크고 묵직한 SLR을 들고 있었다면, 이런 장면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무겁고 존재감이 강한 카메라는 피사체에게 “지금 찍히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 하지만 빅미니는 달랐다. 그 작은 크기와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 덕분에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잡아낼 수 있었다. 순간을 담아낸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빅미니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여기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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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를 오래 사용해 온 사람이라면, 빅미니를 손에 쥐었을 때 묘한 기분이 들 것이다. 작은 바디, 가벼운 무게, 간단한 조작. SLR 카메라의 묵직한 존재감과는 정반대다. 사실 빅미니의 조작감이나 기계적인 만족도는 높지 않다. 특히, SLR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 가벼운 조작감에 실망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셔터를 누른 후 미러가 움직이며 전달해 주던 진동과 소리가 사라진 것이 처음엔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비보다는 사진 자체에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이 진동의 부재가 블러를 줄여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용하고 가벼운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은 빅미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때로는 가장 큰 단점이 되기도 했다. 실내에서도 플래시는 충분한 역할을 해주었다.


가벼운 무게 덕분에 어디든 부담 없이 가지고 나갈 수 있지만, 반대로 손에 쥐고 찍을 때의 안정감은 부족하다. 작은 바디는 휴대성을 높였지만, 그만큼 카메라를 단단히 파지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손에서 쉽게 흔들리는 이 작은 카메라는 익숙해질 듯하면서도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불완전함이 빅미니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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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다시 만난 빅미니는 여전히 작고 가벼웠고, 여전히 손에 쥐면 흔들렸다. 하지만 이 작은 카메라는 그 어떤 카메라보다 나와 함께한 순간을 가장 가볍고도 자연스럽게 기록해 주었다. 필름 카메라가 주는 매력은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과 경험에서 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빅미니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나의 기억을 담아내는 조용한 동반자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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