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은 언제나 예고 없이 시작된다.
바다는 먼저 어두워지고, 산은 그 뒤를 따른다.
하늘은 말을 아끼고, 바람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첫 번째 사진 속 바다는 잿빛이다. 파도는 규칙적으로 부서지지만, 그 규칙 안에는 온기가 없다. 마치 멈추지 않는 시간처럼, 계속 움직이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 풍경이다. 나는 그 바다 앞에 서 있던 한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실직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었고, 하루의 시작과 끝이 같은 색으로 겹쳐지던 때.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아무 데도 닿지 못하고 되돌아오던 파도처럼.
두 번째 사진의 산은 눈을 얹고 있다. 차갑게 덮인 숲과 고요한 물 위에 비친 산의 얼굴. 움직임은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분명 시간이 흐르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던 그 1년이 꼭 이 풍경 같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성과로 증명되지 않는 하루들. 겉으로는 멈춘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리듬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견디는 법을,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세 번째 사진은 안개에 잠긴 산이다. 경계가 사라지고, 앞과 뒤가 구분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세상인지 알 수 없던 시기. 불안은 늘 안개처럼 발목을 잡았다. 잘하고 있는지, 이 시간이 의미는 있는지, 끝은 존재하는지.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안갯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다림’이라는 감각을 배웠다. 조급함이 아니라, 포기와도 다른, 시간을 내 편으로 두는 법.
혹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청년의 시절에는 특히 그렇다. 결과로 증명되지 않는 시간은 쉽게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긴 겨울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성장의 많은 부분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 계절을 견딜 체온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혹한은 지나간다. 반드시.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은, 이후의 도전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은 겨울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나의 성장기였다.
아무도 손뼉 치지 않던 시간, 그러나 분명 나를 다음으로 데려다준 계절.
긴 겨울의 시작은 늘 두렵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단단해진 모습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