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카 오토포커스 모터 D,
작은 모터의 추억

나오카 2nd - YACHICA Auto Focus Motor.006

by hongrang


틱~지 이이이 잉


그날도 별다른 기대 없이 옥션 창을 넘기고 있었는데,

‘Yashica Auto Focus Motor D’라는 낯선 이름이 눈에 걸렸다.

T3도 아니고, T4도 아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모델.

야시카의 초창기 오토포커스 모델이라지만,

너무 조용히 지나간 존재라 누구도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카메라였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내가 찾던 건 ‘전설’이 아니라, 누군가의 첫걸음이었으니까.


1981년.

야시카가 처음으로 모터를 달고 세상에 내놓은 자동카메라.

이 작은 기계는 38mm F2.8의 단렌즈를 달고 있었고,

필름 감도는 ISO 25부터 400까지 대응되었으며,

셔터 속도는 1/500에서 1/8초까지.

무게는 380g, 손에 착 감기는 작고 정직한 바디.

하단에는 포커스 락 버튼도 달려 있었고,

손으로 눌러 튀어 오르는 팝업 플래시까지 갖추고 있었다.

작지만 꽤 야심 찬 구성이었다.

IMG_8887.jpeg 파란색 셔터락버튼
IMG_8888.jpeg 노란색 포커스락
IMG_8889.jpeg 초록색 리와인더

게다가 이 모델은 야시카 최초의 자동 감아·되감기 기능 탑재 모델이었다.

‘Motor’ 모델과 함께 출시되었고,

내 손에 들어온 건 ‘Motor D’ — 여기서 ‘D’는 Date를 의미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카메라는 데이터백이 오락가락하기에 기능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한다.

IMG_8890.jpeg 데이터백과 독특한 방식의 와인딩 확인창


어쩌면 그게 더 좋았다.

시간을 기억하지 않는 사진이란, 시간보다 더 오래 남는 법이니까.


첫인상과 짧은 동행


손에 쥐자마자 느껴진 건 묘한 정감이었다.

바디 곳곳에 자리한 컬러 포인트들은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자연스럽게 손을 이끌었고,

적당한 크기와 안정적인 그립감은 편안한 촬영을 약속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본 리뷰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AF가 자주 나간다, 핀이 정확하지 않다, 실망스럽다—

그런 말들을 뒤로하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첫 출사를 나갔다.


중앙부에 맞춰 초점을 잡았지만, 결과는 대부분 핀이 나간 컷들.

그럼에도 노출은 정확했고, f2.8의 밝은 렌즈 덕분에

부드러운 아웃포커싱과 포커스락기능은 꽤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셔터를 누른 뒤 들려오는 우렁찬 와인딩 소리

그 자체로 이 카메라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했다.


사랑과 한 걸음 거리의 아쉬움


사진을 현상해 보며 생각했다.

이 카메라는 결과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촬영 과정의 ‘감각’과 ‘정서’를 남기는 기계에 가까웠다.


포커스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게 이 카메라의 성격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로모그래피 사이트에서 이 기종으로 촬영한 멋진 작례들을 보며

내 사진 실력을 원망하게 되기도 했다.

AA013.jpg AF는 도대체 AF는


AA036A.jpg 포커스락 기능으로 찍은 아웃포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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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025A.jpg
AA026A.jpg 정말 아쉬운 고영희 씨의 초상

하지만 f2.8의 부드러운 묘사력은 아직 희망을 품게 만든다.

어디선가 또 한 장의 ‘좋은 결과물’을 약속하는 듯한, 그런 태도.



AA005A.jpg
AA006A.jpg


야시카라는 브랜드, 그리고 재회


T3와 T4, 일렉트로 35는 이제 너무 유명해져 버렸고,

맥긴리의 영향으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누구나 맥긴리의 자유로운 프레임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중고사이트를 뒤지게 될 것이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야시카는 다시금 낭만을 이야기하며

필름 레시피를 카트리지처럼 바꾸는 ‘Y35’를 내놓았다.

비록 아쉬운 완성도였지만,

한때 필름 유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건 사실이었다.

스크린샷 2025-09-06 오후 10.23.10.png 모든 카메라덕후를 설레게 했던 이미지포스터

그리고 작년,

‘CITYT100/300’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 야시카.

그 디자인은 참 묘하게도 이 Motor D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은 결국 첫사랑 같은 디자인을 기억하는 법인가 보다.


스크린샷 2025-09-06 오후 10.23.41.png 야시카 100의 홍보광고컷


틱~지 이이이 잉


그리 특별하지도, 전설적이지도 않지만

가끔은 그런 조용한 기계가 마음을 붙잡는다.

야시카 오토포커스 모터 D,

이름 없는 세대의 첫 오토포커스.


그 조용한 모터의 떨림이,

아직도 내 기억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야시카만큼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브랜드 또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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