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만으로 시작된 작은 거인

나오카 2nd - Rollei A110.011

by hongrang
여름은 장미의 계절

샤아아악, 촥


롤라이 A110은 처음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손에 쥐게 된다.

너무 작고, 너무 단단하며,

너무 아름다운 이 녀석은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내가 이 카메라를 처음 만난 건

어쩌다 우연히 들른 중고 상점 한구석이었다.

110 필름이 단종되었다고들 하던 시기였고,

그러다 보니 지금 시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가격을 주고 구매했다.

아마 8~9만 원쯤 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이상한 건,

왜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점이다.

그냥, 홀린 듯이.

2.8 렌즈는 실내에서도 충분히 셔터를 확보해 준다.


작고 단단한 금속의 존재감


이 카메라는 작지만 그렇다고 토이카메라는 아니다.

모든 외형이 금속으로 마감되어 있어 묵직하고 밀도감이 있다.

검게 칠해진 도장면 또한 견고하다.

110 포맷을 사용하는 카메라 중에 이 정도 감각을 가진 제품은 드물다.

겉모습만 본다면, 아무나 반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수많은 커스텀 모델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롤라이 모델들(출처.라이카뮤지엄)


특히 슬라이드 방식의 장전 시스템

손에 감기는 느낌이 있다. 적당한 저항감이랄까 아마 슬라이드 로딩방식의 단점일 수도 있다.

필름을 장전할 때마다 샤아악, 쇠판이 스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곤 셔터를 누르면 촥.

작은 카메라에서 나오는 의외의 셔터의 소리다.

셔터도 무척 가볍다.

무게가 가볍고, 전체 구조가 작다 보니

조금이라도 셔터가 무거우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셔터의 반응감은 매우 잘 설계되었다.


다만 XA 시리즈나, 미녹스처럼 손끝이 허공을 누르는 느낌은 아니고,

작지만 존재감 있는 소리와 감각이 있다.


독일식 완벽주의가 만든, 가장 작은 자동카메라


1974년.

Rollei A110은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제대로 된 자동카메라”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개발되었다.

당시 독일의 롤라이사는 이미 35 시리즈로 명성을 얻고 있었고,

A110은 그 명맥을 초소형 자동 노출 시스템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여기엔 Rollei 특유의 광학 기술력과 설계 미학이 고스란히 들어간다.

23mm f2.8 Tessar 렌즈, 실리콘 노출계, 전자식 프로그램 셔터.

이 작은 바디 안에 렌즈 셔터와 자동 노출 회로, 슬라이드식 필름 장전 시스템을 모두 넣었다는 건,

지금 봐도 꽤 대담한 도전이었다.


작은 크기와 자동화, 정교한 렌즈를 모두 갖춘 카메라.

그게 바로 Rollei A110의 존재 이유였다.


첫 롤, 그리고 테사 렌즈에 대한 생각


23mm 테사 렌즈.

이름만 보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첫 롤을 찍었을 땐, 실망감이 더 컸다.


“이게 테사 맞아?”

로모그래피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니

비슷한 경험담들이 많았다.

결국, 110 필름이라는 물리적 한계.

해상도보단 분위기가 중요한 경험이었다.


후보정으로는 어느 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진 보정의 문제이지 카메라 본연의 힘은 아니니까.

특정한 상황에서도 잘 나오는데
파랑이와 숨바꼭질

A110, 지금 시점에서의 가치


요즘은 로모그래피 덕분에 110 필름을 다시 구할 수 있다.

그래서 A110도 다시 **‘힙한 카메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작은 파우치에서 꺼내어 한 컷씩 찍는 그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


그리고 만약 여자친구가 있다면

이 카메라는 가장 먼저 넘겨야 할 기기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조작 없이,

셔터만 누르면 되니까.

직관적인파인더와 귀여운 그래픽

단점이자 아쉬움, 그리고 해보고 싶은 것


A110은 모든 노출이 자동이다.

그리고 그 자동성은 실내나 흐린 날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1회용 스트로보 액세서리 외엔

X접점도, 동조 포트도 없다.

그게 이 카메라의 가장 큰 한계다.


만약 기본적으로 싱크 단자만 있었다면,

이 카메라는 실내 포트레이트까지 넘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지금도 너무 아쉽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문득문득,

이걸로 작은 포트레이트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10 필름만이 줄 수 있는 작은 감도,

로모그래피 특유의 엷은 색,

그것만 모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인쇄물이 될 것 같다.

찰칵, 다음 페이지를 위해


이 카메라는 지금 가장 좋은 스트리트 카메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다만 필름의 압박, 해상도의 한계, 조명의 제약이 있을 뿐.

그걸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사진을 ‘잘 찍는’ 카메라가 아니라

‘계속 찍고 싶게 만드는’ 카메라로 남을 수 있다.


롤라이 A110은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 아름답다는 말속에 모든 가능성이 포함된 기계일지도 모르겠다.

다음번엔 아주 밝은 날,

빛이 충분한 곳에서 다시 한번 써보려 한다.

배터리 인디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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