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카메라라는 말의 진짜 의미

나오카 2nd - EOS650+40 pencake.012

by hongrang

찰칵, 찌이이이잉


시야각 94%의 광활한 파인더

이 카메라는 사실 서비스였다.

다른 카메라를 구매하면서 딸려온 물건.

“필름 SLR 한 대 더 드릴게요.”

그렇게 덤처럼 손에 들어온 캐논 EOS 650.

별 기대 없이 받았지만,

쓰면 쓸수록 이게 덤이 맞나 싶다.


자동이란 무엇인가


EOS 650은 1987년 출시된 캐논 최초의 EF 마운트 카메라다.

당시엔 그냥 숫자 세 자리가 붙은 보급 기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면 이 카메라가 시작이었다.


필름 ISO 자동 인식,

오토포커스,

자동 필름 감기와 되감기.

그리고 무엇보다 P 모드.


콤팩트 카메라보다도 사실 더 단순하다.

필름 넣고, 모드 P에 놓고, 찍기만 하면 된다.

“이게 자동이지.”


크기, 성능, 그리고 의외성


손에 들어보면 생각보다 크다.

세 자리 숫자니까 소형 바디일 줄 알았는데,

무시무시한 존재감이다.

스트로보도 없고,

버튼식 모드 변경,

셔터 속도는 1/2000초,

노출 보정은 5단계.

그 당시 니콘 F-501을 겨냥한, 제법 진지한 설계의 카메라였다.


하지만 밀리언셀러 모델 EOS 5가 워낙 유명했던 탓에

이 시기의 EOS 시리즈는 다른 모델들은 다소 잊힌 느낌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의외의 성능’에 감탄하게 된다.

간결한 인터페이스 마치 EOS 1시리즈의 조작에 시초를 보는듯하다.


나의 첫 스튜디오, 그리고 EOS 5


내가 처음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손에 들었던 카메라가 EOS 5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캐논 바디를 보면

손이 먼저 기억한다.

P 모드, QD 설정, 드라이브 조절, 초점 이동…

눈을 감고도 조작이 가능하다.


당시 내가 찍던 건 유치원 소풍, 운동회, 가족 행사.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들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던 시절이었다.

3명씩 구도에 넣어 한 장만 찍어도

3장을 인화해 판매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카메라보다 더 많은 걸 배웠다.

아이를 다루는 법, 상황을 빠르게 캐치하는 법,

그리고 ‘잘 찍는 것’보다 ‘놓치지 않는 것’의 중요성.


EOS 650과 40mm, 가벼운 여행


이번엔 EOS 650에 40mm 펜케이크 렌즈를 물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렌즈 하나로

거리감은 충분하고,

간이 매크로 기능도 있어

얼굴 클로즈업도 무리 없다.


여행 내내 날씨는 흐렸고,

비가 자주 내렸지만,

그 덕에 채도가 묘하게 좋은 사진들이 나왔다.

과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색감.

그 시절 EOS 만들어내던 필름 특유의 균형감.

40mm지만 풍경과 함께 편안히 담을 수 있다.
40mm는 진정한 카페렌즈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바디


EOS 650은

‘처음이라 특별한’ 카메라가 아니라,

‘오래 써서 편안해진’ 카메라였다.

손에 쥐었을 때 설명서 없이도

모든 게 익숙하게 움직였다.


신뢰감 있는 셔터음,

쓸데없는 기능 없이 깔끔한 레이아웃,

그리고 실망 없는 결과물.


지금은 사용 빈도가 줄었지만

아직도 내 필름 카메라 박스 어딘가에

깨끗이 닦인 채로 누워 있다.

간이 매크로로 인해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다.


한 손의 자유, 자동의 힘


P모드에 놓고 노출만 적당히 맞춰두면

EOS 650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는 카메라가 된다.

한 손으로 반셔터만 잡고,

그대로 자유롭게 셔터를 끊을 수 있다.


여행지에서의 한 손의 자유로움은,

상상보다 훨씬 많은 걸 가능하게 한다.

한 손엔 카메라,

다른 한 손으로는 피사체에게 훈수를 둔다거나,

커피를 들고 찍는다거나,

때론 햇살을 가리는 제스처까지도 함께할 수 있다.


무게도 적당하다.

너무 가벼워서 흔들리지도 않고,

너무 무거워서 피곤하지도 않다.

그 안정적인 파지감은

‘그냥 찍는 사진’이 ‘놓치지 않는 사진’이 되도록 도와준다.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으니,

자동카메라가 맞는 것이다.

복잡한 계산을 내려놓고

그저 순간을 마주하며 찍는 것.

그게 이 바디의 진짜 쓰임새다.

스펀폭포-작은 줄 알았는데 미니 이과수 정도로 보이긴 한다.

찰칵, 찌이이이잉


그리고 신뢰라는 감각


요즘 누가 EOS 650을 쓴다고 하면

아마 대단한 감성 소비자쯤으로 여겨질 거다.

하지만 내게 이 카메라는

가장 실용적인 자동 필름 카메라였다.


고장 없이,

말없이,

기록만 남기는 그런 기계.


그 시절 내게 ‘자동카메라는 역시 캐논이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바디.

EOS 650은 그런 카메라다.

지금도, 그 믿음은 유효하다.

마지막 대만의 밤-타이베이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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