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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바다 수영의 기록, 한 권의 책이 되다

제주에서 이뤄낸 매일의 노력. 첫 번째 이야기

by 수우수



2023년, 추억의 투지폰 '롤리팝'을 손에 들고, 백팩 하나에 살림살이를 꾸리고 제주에 내려왔습니다.


다시 만난 제주는 포근하고, 다정했습니다. 길가에 나무들이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진짜로 숨 쉬는 나무를 보기 어려웠다고 기억합니다. 가로수로 심어져, 수많은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에 코를 막고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스마트폰 없이 내려온 제주에서의 5개월은 남겨진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투명하지만 노란 자국을 남기는 햇볕을 끝없이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커다랗게 손 흔드는 나무들을 경탄하며 바라본 기억만 가득 있습니다. 오래 걸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거라는 마음이 막연히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 하얀 볕에 천천히 증발했나 봅니다. 거세지만 뭉글뭉글한 바람에 어느새 휙, 날아가 버린 걸지도.


서울에 남아있던 짐과 세간살이를 모두 처분한 후, 빵빵하게 부푼 백팩을 메고 제주에 완전히 내려왔습니다. 겨울인데도 도무지 춥지가 않아서 그 이후로도 오래 걸었습니다. 가볍게 걸치고 오래, 오래 걷다 보니 제주의 전성기가 찾아왔습니다. "여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바다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5시쯤 일어나 근처 공원을 걷거나 달리는 날이 3주 정도 지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봄은 뿌옇고 무거운지라, 깨끗하게 맑은 여름이 반가워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그렇게 매일 운동한 기억을 가진 몸이라 새벽의 찬 바다도 기쁘게 받아들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맞는 바다의 첫인상은, 몹시 고요했습니다. 여름철 휴양지의 바다로 보이지 않을 만큼요. 그 커다란 조용함이 좋았습니다. 몇몇 중년의 어른들이 이미 바다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꽤 많은 수의 사람이 바다를 따라 맨발로 걷는 진풍경도 펼쳐져 있지만, 누구 하나 크게 소리 내지 않았습니다.


"바다 님, 저를 안전하게 머물다 가도록 허락해 주세요."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바다에 한 발 한 발을 내딛고 몸을 빠뜨렸습니다. 그러면 안전선 안에서도 무한한 바다의 한 자락을 맛보는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수경을 통해 내다본 안전선 건너편 바다의 아득함.... 그건 경외감이었겠지요.





수영하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설정된 안전선의 끝과 끝, 그 사이를 왕복하며 자유형을 했습니다. 몇 미터였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음파를 47번 이어가면 끝에서 끝에 다다랐습니다. 오직 그 숫자를 세며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가끔 의식하면 무서운 바다의 깊이, '이곳에서는 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바다가 내 키보다 깊다'라는 두려움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때때로 얕은 바다에서도 물고기들이 떼로 헤엄쳐 다녔습니다. 그런 신기함. 열심히 수영하다 지쳐 떨어져 나와 둥둥 떠다니며 올려다보는 하늘, 그 햇살에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쉬었습니다. 감은 눈 위로도 보이는 노랗고 예쁜 빛, 강하고 다정한 그 온기를 느끼는 날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하루 종일 용감하게, 상냥하게 지냈습니다. 바다와 새벽, 수영과 자연이 저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름 중순에,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왔습니다. 친구를 데리고 바다 수영을 나갔습니다. 친구는 수영장에서 강습을 듣고 수영을 꽤 잘하는 '상급자'였는데, 바다 수영은 수영장에서의 그것과 아주 다른 느낌이라고 전했습니다. 파도가 쳐서 방향을 도저히 잡을 수 없다고요. 저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 기억은 너무 아득하고, 이미 바다 수영에 익숙해져 정확한 수영 동작보다는 바다의 거친 물살을 뚫고 수영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저만의 수영 방법을 터득했었나 봅니다.



새벽의 공원, 그 기분 좋은 불끈불끈함.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주에서 별다른 직장과 직업이 없었습니다. 매일 바다 수영을 하던 그 시기는 저를 놀랍게 변화시켜, 방 바깥의 넓은 세상으로 뛰어 들어가도록 도왔습니다. 마치 바다에 온 몸을 던졌던 것처럼요.


이때의 기록은 차곡차곡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표류의 기록』이라는 독립 출판물을 제작하고, 도서전에 참여하고 서울의 몇몇 서점에 책을 입고했습니다. 개인 SNS와 웹사이트에서도 판매하기 위해 개인사업자 등록까지 마쳤습니다. 사람들이 한 권, 두 권 책을 사주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청년 사업 관련 발표회에서 발표를 맡고, 지역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제 책을 보고 연락을 준 다른 사람의 책도 만들었습니다. 제주관광공사의 서포터즈로 선발이 되어 제주에서 걷고, 먹고, 수영하고, 요가한 일상을 관광 콘텐츠로 녹여내어 글과 그림을 기고하였습니다. 청년센터에서 <나를 발견하는 디자인> 강의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채워지고,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또 반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저는 불안합니다. 그리고 앞길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여름날에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바다에 몸을 부딪쳐 들어갔던 시기는 깊은 깨달음을 남겼습니다. 몸의 깨달음입니다.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일이 시작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무엇이 될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몸부터 움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여 나만의 경험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제주에서 여름 내내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였던, 끈질기게 새벽을 깨워 살아 있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시기의 일기를 첨부합니다.


[눈동자 위에 얇은 바다 물막이 생긴다. 그 틈으로 아른아른 비추는 햇빛. 노란 빛 번짐과 여러 조각을 쪼개져 반사되는 하얀 조각들. 동그라미, 오각형, 육각형, 보석에 빛을 쪼이면 나오는 무지개. 이 빛의 산란을 마주하며 햇볕을 쬐면 오늘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다정하고 친절해야겠다는 결단이 선다. 이렇게 좋은 걸 누릴 수 있는 나는 무조건 멋진 하루를 살아내야지, 그렇게 되겠지.]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구요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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