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유치원에 다녀?
"너는 어느 유치원에 다녀?"
집에서 공원으로 걸어가려고 건널목을 건너려고 건널목에 서있는데 어떤 아이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유치원을 다니고 있지 않는 아기곰은 놀랐지만 "난 유치원에 안 다녀."라고 대답했다.
물어본 아이는 의아한 듯 아기곰을 쳐다보고 건널목을 건너갔다.
안녕이라는 인사도 접어두고 어느 유치원에 다니냐며 불쑥 물어보던 아이는 공원에서도 다시 마주쳤고 아기곰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걸어보고 싶은지 아기곰의 주변을 맴돌았다.
아기곰도 그 친구가 자기 주변을 맴돈다는 걸 알아챈 눈치였다. 아기곰에게 먼저 가서 '같이 놀까?'라고 물어봐도 된다고 알려줬더니 그 친구에게 가서 말을 걸고 같이 공원 놀이터에서 놀게 되었다.
그 아이는 공원으로 건너오는 건널목부터 아기곰과 같아 놀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어린이들이라면 다 다니고 있는 어느 유치원에 다니냐고 묻고 자신은 어느 유치원에 다니며 우리 유치원은 어떻다라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대답을 듣자 할 말을 잃었던 것 같다. 그 아이 주변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내 주변에도 그러하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두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왜 가정보육은 어려울까? 내 주변의 친구들을 보아도 가정보육은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먼저,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아이를 키우려면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맞벌이를 하지 않고 한 명의 수입만으로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다.
한 명의 수입이 두 명의 수입 정도인 급여를 받는 가정이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를 선택한다.
맞벌이를 선택하는 건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다.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려면 부부 둘이서만 살 때보다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예를 들면, 가족들이 함께 탈 수 있는 자가용, 안전한 주거환경, 학군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안전한 곳에 대한 욕구 등이 있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 경제적 능력은 더 요구가 되는 상황이 되지만 어린 자녀를 두고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돌까지는 육아휴직을 하며 키우고 돌 이후로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러 가게 되는 엄마들이 참 많다. 커리어를 위한 욕심으로 이런 선택을 하는 부모들은 굉장히 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아이를 위해, 우리 가정을 위해 양육을 포기하고 맞벌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육아를 하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성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보육을 하며 육아를 하게 되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 된다. 거의 24시간이 육아모드, 엄마모드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육아는 아프다고 하루 연차를 낼 수도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한두 시간 쉴 수 있는 일도 아니기에 인간으로서 한계를 느끼게 될 때도 많다. 또한 내가 낳았고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항상 사랑스러운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 해서 웃을 일이 반이라면 반은 아이와의 실랑이다. 울고 불고 떼쓰고의 반복이다.
아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 아빠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아이는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부모는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 이런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다 보면 보통 성인이라면 멘털이 너덜너덜 해 질 수밖에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참지 못하고 화라도 낸 날에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배겟잎을 적셔야 한다. 이렇듯 육아는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이유도,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도 아닌 다른 이유로 어린이집을 선택하기도 한다.
바로 '내가 아이의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두 돌이 지나고 올 수도 있고 누구는 세돌이 지나서 느낄 수도 있다. 가정보육을 잘하던 부모님도 이런 느낌을 받게 되면 기관을 알아보게 된다. 아이가 기관에 가서 좀 더 전문적인 교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그 시기에 받아야 하는 자극과 여러 경험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기대로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부모님이 정한 여러 기준에 부합하는 기관으로 정하여 아이를 보내게 된다.
우리에게는 그 시기가 늦게 오는 것 같다. 이제 아기곰은 48개월이 되었고 만 4살이 되었다. 아직 기관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내년 한국나이로 6세가 되면 가까운 유치원에 다녀볼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떤 시기에 기관에 보내는 것이 좋은지 아직은 고민스럽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우리 아기곰도 사회생활이라는 걸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