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 <미나리>, 202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어딘가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고단한 삶,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아이에게 지극 정성인 어머니, 천진하면서도 많은 속뜻을 보여주는 아이들, 교훈을 담고 있는 듯한 결말, 상징적인 소재, 세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 …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참 보던, 교과서에 실릴 법한 이야기 구성이었다.
그런 이야기에 길들여진 사람이어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토네이도, 물, 불, 뱀, 심장병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위험과, 병아리 부화장에서 함께 일하는 한국인, 폴, 교회 사람들 같은 아칸소의 새로운 이웃들처럼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위험이 도사리는 가족의 삶은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이런 위험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났다 하더라도 가족을 흩어놓지 않는다. 토네이도는 주의보로 그쳐서 트레일러 집은 무사했고, 부족한 물은 돈으로 해결되어 무사히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뱀은 물지 않고, 심장병은 아이가 크며 무사히 호전되어갔으며 이웃들은 조금 특이하긴 해도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다.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거보다 더 나은 거야. 숨어있는 게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란다.” 할머니 순자(윤여정 분)의 의미심장한 말은 단순히 그 순간에 국한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현실같다고 느꼈던 건 익숙한 복선이 으레 현실에서 그렇듯 별 일 없이 지나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흩어놓은 것은 가족, 특히 아버지인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아내 모니카(한예리 분)가 지향하는 방향의 차이였다. 가족을 위해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남편과 가족을 위해서는 자신의 꿈을 접어 두더라도 함께해야 한다는 아내의 입장 차이는 영화의 시작부터 어긋나기 시작해서 네 식구가 함께 오클라호마를 방문하는 날 폭발한다. 예정된 거래처와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된 제이콥은 아들 데이빗(앨런 김 분)의 심장 검진차 오클라호마에 방문하는 날 새로운 거래처를 알아보려고 한다. ‘아들 심장 검진을 위해 온 것이니 채소를 차에 두고 오라’는 아내의 말에도 제이콥은 40도를 육박하는 폭염에 샘플용 농작물 박스를 기어코 가지고 병원에 들어온다. 아들의 심장병이 호전되었다는 희소식을 듣는 한편 제이콥도 한인마트에 농작물을 납품하는데 성공한다. 아들의 심장병과 경제적인 문제, 모두가 해결되어 가족이 헤어질 필요 없으니 자신의 선택과 노력이 옳았다고 제이콥은 생각하지만, 모니카는 아이들의 양육과 뇌졸중을 앓는 어머니 순자의 간호에 지쳐가는 중 가족 대신 농사를 우선시하는 제이콥의 태도를 견딜 수 없었다. 남편이 최상의 상황이라고 생각한 순간, 아내는 이별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가족을 다시 한 덩어리로 만든 것은 위험이었다. 순자는 뇌졸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을 정리한다. 아칸소의 트레일러 집에서 오클라호마까지는 다섯 시간, 귀가가 늦는 가족을 위해 여느 때처럼 쓰레기를 태우던 중 불 붙은 종이박스가 바닥에 떨어져 마른 풀밭에 옮겨 붙는다. 가족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농작물을 쌓아둔 창고의 귀퉁이를 타고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부부는 황급히 농작물을 옮겨보지만 연기와 열기에 쓰러진 모니카를 데리고 제이콥은 창고 밖으로 탈출한다. 자신의 잘못이라며 트레일러 집을 떠나는 순자를 데이빗은 심장이 튼튼해졌다는 걸 보여주듯 뛰어가 데리고 온다. 바닥에 나란히 누워서 자는 온 가족을 순자가 바라보는 것으로 장면은 끝이 난다.
타국을 배경으로 한 어찌보면 흔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건 디테일의 힘이다. 회초리,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엄한 표정을 짓는 아버지, 한약, ‘우리 손자 죽게 안 둔다’며 짐짓 강하게 말하는 할머니, ‘다라이’와 플라스틱 바가지, ‘지영 아빠/엄마’ 라는 호칭, 바닥에 함께 누워 자는 모습. 분명 시대도 다른 미국 이민자들의 삶인데 내 기억속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익숙한 풍경 속의 이질적인 행동과 물건들에서도 비슷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문화가 교집합을 이루는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익숙한 점과 다른 점을 찾아내고 결국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유래했을지 모르는 디테일과 더불어, 순자의 화투와 함께하는 은은한 쌍욕이나 프로레슬링을 보며 나온 호들갑스러운 혼잣말 같은 윤여정의 기가 막힌 연기 덕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