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력이 빛난 조선 전기 미술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전을 다녀왔다.
조선 전기 작품들을 '백(白), 묵(墨), 금(金)'이라는 세 가지 색으로 분류해 보여주는 전시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땐, 솔직히 평범하게 느껴졌다.
전시 기획에 대한 흥미보단 한 때 도자기를 빚어본 사람(주 1회로 두 달 다녔던ㅎㅎ)의 호기심으로 보러 가게 됐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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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하나하나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 않았다.
이름난 거장들의 대표작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유난히 튀는 조형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배치와 조합, 그리고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은 놀라웠다.
무엇을 보여주고, 어디에 시선을 머물게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전시였다.
그 안목이 감탄스러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도자기 그릇들을 색상별로 묶어놓은 벽면이었다.
개별로 보면 그리 주목받지 않았을 그릇들이,
한데 모이자 10폭의 병풍처럼 보였다.
절제된 색감과 명암, 간결한 선들이 조용한 리듬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조선의 미감이 은은하게 살아났다.
그 공간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 되는 순간.
기물보다 기획이, 작품보다 공간이 더 오래 눈에 남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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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호암미술관에서 겸재 정선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그 전시는 단연 작품의 힘이 컸다.
이미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작가,
완성도 높은 구성, 전시품 자체의 아우라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새 나라 새 미술》은 방향이 달랐다.
작가 미상의 작품들도 많았고,
그림들은 세월 속에 본래의 형태를 많이 잃은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는 더 특별했다.
보완의 기획이 아닌, 재해석의 기획이었고,
있는 그대로를 빛나게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만든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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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문제로 오래 머물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한 시간 정도 후다닥 둘러보고 나왔지만,
발걸음을 옮긴 뒤에도 마음은 여전히 그 공간에 남아 있었다.
좋은 전시는 늘 그렇다.
다 보고 나왔는데, 어딘가 여운이 남는다.
이번 전시가 그랬다.
그런데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작품이 주는 여운보다, 이 작품들이 빛날 수 있게 치열하게 고민한 전시 뒷 편의 사람들의 진정성과 애정이 더 크게 와닿았다.
기획자들의 눈과 손끝에 묻은 노력이 공간 곳곳에서 빛났다.
입장료는 8천 원.
돌아 나오는 길에 이 가격이 너무 헐하게 느껴졌다.
두 배여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분히 밀도 있는 경험이었다.
국내 박물관 전시가 이토록 감각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작품보다 공간이 말을 거는 전시,
《새 나라 새 미술》은 그런 전시였다.
좋은 기획자를 만난 유물들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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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유물 관람이 아니라, 기획으로 감동을 만든 전시. 조용한 몰입이 필요하다면 이 전시를 꼭 경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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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 없이 갔다가 감격에 젖어버린 관람객이 쓴 찐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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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나라 새 미술》
국립중앙박물관 / ~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