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온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핫팩이 될 수 있을까?

by 파르크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인맥이나 교류가 아니다. 정서와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그물망이다. 우리는 그 그물 안에서 누군가와 무심함을 나누고, 어떤 이와는 깊은 유대감을 쌓는다.

이 관계의 그물망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작게는 개인의 일상적 감정에서 시작해, 크게는 한 사회 전체의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가와 세계로 확장되면 '공감', '시대정신', '시민의식' 같은 거창한 이름으로 모습을 달리한다.

흥미로운 건, "나는 혼자 살아도 괜찮아"라는 말조차도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기준 삼아 나온 결론이라는 점이다. 관계를 거부하는 태도조차 관계의 흔적 안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그렇게, 관계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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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읽은 두 소설도 "관계"가 중심이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자란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다. 『파과』는 타인의 온기를 모른 채 성장한 소년과 고독한 노인이 만나는 서사를 그린다.

두 작품 모두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성장해야만 했던 주인공들이 나온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가난이라는 장벽 앞에서, 무관심이라는 단절 앞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이유로 감정을 거세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며 강해지려 애를 쓴다.

그런데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클라우스와 조각은 관계 속에서 일말의 온정을 나눌 줄 안다. 왜냐하면 이들에겐 돌봐준 안토니아의 가족과 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우는 다르다. 따뜻한 관심을 받아본 경험이 적다. 어린 시절 곱게 갈린 가루약을 건네받던 게 투우 기억 속 가장 강렬한 관심이다. 그렇다 보니 투우는 관계에 흔들리고 정에 흔들리는 조각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오히려 그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고, 관심 표현을 폭력의 방식으로 치환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충분한 애정을 받고 자란 경험이 없어, 누군가를 향해 따뜻해지는 법을 배울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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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혹독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냈지만, 누군가는 미지근하게나마 온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아린 냉기만 나눈 채 살게 되는 걸 보면서 깨달았다.

살아가는 과정 중에 주고받은 관계의 온도가 인간에겐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관계 속에서 성장하지만, 그 관계에 애정이 부족했던 채 자라난 주인공들은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들이 품은 냉기는 쉬이 데워지지 않는다. 따뜻함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온정을 느끼고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건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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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점점 식어가고 있다. 마치 다 쓴 핫팩처럼, 미지근하게.

사람들은 피로해지고, 피로는 여유를 갉아먹는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보내려는 마음의 여백이 점점 줄어든다. 관계를 따뜻하게 이어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는 지금, 관계의 빙하기를 통과 중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각자의 생존에 급급해, 타인을 돌볼 여력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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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언젠가 다시, 서로가 서로에게 훈풍이 되어주기를. 이 공허한 시대에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혐오가 아닌 연대의 언어로 관계를 이어나가기를. 서로가 서로를 더는 삭막하게 만들지 않기를.

거창한 변화는 아니어도 좋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을 잃지 않기 위한 끈기, 관계의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자. 지나가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보자. 피곤하다는 이유로 차갑게 대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보자.

작은 온기들이 모여 큰 따뜻함을 만들어낸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핫팩이 될 수 있다면, 이 차가운 세상도 조금은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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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 누구의 핫팩이 되어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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