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

직업병이 즐거움이 되다.

by 파르크

내 SNS 알고리즘에 K열풍이 찾아왔다. 조선시대 도자기며 회화 관련 전시가 부쩍 나를 유혹한다. 중학생 때, 광해군의 서사에 빠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들이 동방신기 부인을 외칠 때, 나는 무소의 뿔처럼 “광해군 여친”을 외쳤다. 그런데 수능에서 한국사 점수가 내 기대를 배반했고, ‘현명한 군주’라 여겼던 광해군에 대한 콩깍지도 벗겨졌다. 소문난 역사 덕후였던 내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휴식기가 찾아왔다.‘잠깐’ 쉬려던 덕질은 그렇게 10년을 훌쩍 넘겼다. 내 맘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역사 유물이나 회화에 대한 관심도 시들었다. 전시를 보려고 해도 외국작가를 우선순위에 뒀고, 그다음이 한국 근현대작가 전시였다. 조선은 관심 밖이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내 전시 관람 판도를 바꿔놓은 건, 최근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전”이었다. 우연히 알고리즘을 타고 내게 닿은 전시 소식을 보고, ‘퇴사도 했겠다, 할 일도 없겠다, 평일 오전에 셔틀 타고 사부작 다녀와볼까’ 생각했다. 사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도 회화 자체보다는, 초봄의 호암미술관 전경이 보고 싶어서였다.


런데 막상 가서 정선의 작품들을 감상하니, 조선 회화가 지닌 서정적인 멋과 고즈넉한 아름다움에 눈이 떠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중박)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전시를 보게 됐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시기획력에 감탄을 했다. 전시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전시를 보고 나니 십여 년 전 증발해 버렸던 조선을 향한 덕심이 부활했다. 감정이 쉬이 가라앉지 않던 틈을 타, 나의 알고리즘이 귀신같이 또 하나의 전시를 들이밀었다. 바로, 호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호림명보 》이었다.



시도 전시장도 생경했다. 그렇다고 뭘 더 찾아보는 성격도 아니라서 알고리즘이 보여준 전시 이미지에 끌려 관람을 결정했다.(계획보다 흐름을 따르는 내 P성향다운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전시 규모는 컸고, 구성품들의 수준은 놀라웠다. 이렇게나 많은 보물과 국보를 개인 갤러리가 전부 소장하고 있다니. 심지어 보존 상태도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 국중박에서 전시 중인 작품들보다도 퀄리티가 훨씬 높아 보였다. ‘명보’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주제는 명확했으나, 별다른 스토리 없이 “우리는 이렇게 근사한 보물이랑 국보 많아요”라는 메시지에 치중된 느낌이었다. 총 3층으로 나뉜 전시 공간엔 고려시대 도자기와 불교경전, 조선시대 도자기와 회화들이 뒤섞여 있었다. 각 층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전시에 대한 설명조차, 첫 번째 전시실 초입에 적힌 갤러리 소개와 보물의 수를 언급한 내용이 전부였다.


바로 직전에, 메인 주제를 하나의 콘셉트로 명쾌하게 풀어낸 전시를 보고 온 직후였던 탓일까. 이번 전시의 빈약한 맥락이 아쉽게 다가왔다. 구성품 퀄리티가 낮았다면 실망으로 끝났겠지만, 너무도 뛰어난 작품들이 단지 “모아놓은 것”에 그쳐버린 듯해 아쉬움이 컸다.


전시를 보면서 자꾸만 ‘나라면 어떻게 구성했을까? 이 멋진 작품들을 어떻게 보여주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졌던 건, 기획이 철저히 ‘공급자 관점’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많은 보물을 갖고 있습니다” 대신, 관람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로 이야기를 짜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시대보물, 시대미감’ 같은 큰 주제를 중심에 놓는 방식이다. 삼국에서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삶의 철학과 미적 감각을, 절정의 미감으로 완성된 작품들을 통해 하나의 흐름으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전시 공간을 ‘현실과 이상’이라는 축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1 전시실은 “일상미감: 일상의 격”으로, 고려와 조선의 실용미와 취향의 흐름을 좇고,

2 전시실은 “이상미감: 신념의 결”로, 불경과 의례용 도자기 속 ‘세속을 넘어선 미감’을 들여다보며,

3 전시실은 “계승미감: 미학의 맥”으로, 시대를 이어 지금도 단아하고 고요한 미를 전하는 달항아리를 중심으로 오늘의 감각과 연결되는 전통미를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꾸민다.





이렇게 구성했다면 관람객은 전시를 따라가며 시대의 미감과 감각을 함께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작품들과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는 사이, "보물/국보"라는 타이틀로 강조하지 않았어도 완성도를 자연스럽게 감각하게 되었을 테고, 전시의 품격도 훨씬 더 깊고 은근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시를 보며 ‘컬렉션 자랑’이라는 인상보다는, 기획된 메시지를 따라가며 감상하는 가운데 ‘이 많은 작품이 보물 혹은 국보였구나’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제는 한자와 많이 멀어진 관람자들을 위해, 불경 작품은 벽면에 펼쳐두고, 한자로 된 내용은 현대어로 번역해 함께 적어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QR코드는 있었지만 유리에 반사된 조명 때문에 인식이 잘 안 돼서 작품 설명을 읽는 데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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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가 혼자 머릿속으로 전시를 보며 그려본 구성이니 너그럽게 생각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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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전시를 분명 좋아는 했지만,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한 채로 허탈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뭘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가 다른 지도 모르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서는 날이 더 많았던 나였는데.


요즘엔 다르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들을, 서로 다른 주제와 방식으로 기획한 전시들을 연달아 보다 보니 전시를 즐기는 나만의 방식이 생겼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브랜드 기획자로 살아온 지난 2년의 시간이 내 시선을 바꿔놓은 것 같다.

작품 자체보다도, 그 작품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먼저 살피게 된다. ‘이 전시는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 ‘그 메시지는 나에게 닿았나’, '공간을 어떻게 꾸몄나'살피게 된다.


전시를 향한 외사랑이 이렇게 진화하는 걸까.

그래도 최근 연달아 좋은 경험을 하면서, 전시를 감상하는 나만의 즐거움이 생긴 건 참 반갑다.

이제야, 나에게도 그 값진 새싹이 조용히 돋아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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