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예술로 엿보는 사람들의 시대별 추구미

by 파르크

모든 물체가 목적에 맞게 형태를 갖췄던 시절이 있었다. 문을 열기 위해 손에 꼭 맞는 손잡이가 있었고, 바람을 만들기 위해 회전하는 날개를 단 선풍기가 있었다. 형태가 곧 본질이었다. 기능을 정교하게 담기 위해 모습은 섬세해졌고, 정교함은 곧 기술력과 미감의 지표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질서를 뒤흔들었다. 이제는 형태 없이도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도구들이 늘어났다. 센서로 작동되는 문은 손잡이를 필요로 하지 않고, 선풍기는 블레이드 없는 디자인으로 바람을 내보낸다. 카메라도 뷰파인더와 셔터가 화면 속 인터페이스로 대체됐다. 형태는 점차 사라졌고 본질만이 남겨졌다.


이 흐름은 20세기 후반의 미술이 먼저 겪었던 길과 닮아 있다. 한때 사실적인 묘사로 진짜를 구현하려 했던 미술은, 이후 점차 형태를 해체하고 그 이면의 개념과 맥락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은 최소한의 형상으로 본질을 표현했고, 컨셉추얼 아트는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 그 자체를 예술로 주장했다.
형태를 지워 의미를 드러냈다.


지금의 예술은 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과거처럼 ‘덜어내는 것’이 곧 진정성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요즘 회화나 조형 예술을 보면 작가마다 저마다의 감각과 세계를 풀어낸다. 그 속엔 시간이 깃들고 고유한 철학이 느껴진다. 무언가를 빨리 찍어낼 수 있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공들여 만든 것’에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문다. 이건 단지 미적 취향의 변화라기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쉽게 바뀌지 않는 태도를 향한 선망처럼 보인다. 어느 때보다 복제가 쉬워진 지금.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유와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이 향한다는 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진짜로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기계처럼 정확하게 찍어내는 완성도보다 손끝의 흔들림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밀도가 더 오래 남는다.
형태를 없앤다고 해서 본질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생각과 태도가 있어야 비로소, 본질은 의미를 가진다. 그런 예술을 우리는 알아본다. 그리고 그런 예술을 만든 이처럼 자기만의 감도와 깊이를 가진 사람을 우리는 동경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쉽게 찍혀 나오지 않는다. 그저 형태를 덜어낸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담금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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