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다 각자의 동굴 속에 산다

by 파르크

우연히 사이비 종교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들만의 공동체를 세우고 세상과 단절된 채 교주를 신처럼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처음엔 그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저런 걸 믿을 수 있을까.
기괴한 옷차림과 허무맹랑한 말들만 늘어놓는데 신도들은 맹신을 넘어 인생을 걸고 있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엇을 믿는 걸까. 허상에서 깨어났을 때 느낄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우리 눈엔 안타까운 삶이지만 저들에게는 그 환상이 오히려 천국 일려나.'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 문득 하나의 물음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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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는 남들과 결이 달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경쟁이라는 동굴 속에서 성적이라는 그림자만 바라볼 때
나는 그 바깥에 빗겨 나 있었다.
앞서기 위해 공부한 적은 없었다.
재미있으면 더 알고 싶어서 공부했고 흥미가 없으면 과감히 내려놨다.

그래서 과목 간 성적 편차가 심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등급은 나를 증명하는 지표가 아니었고 성적이 낮다고 기죽지도 않았다.
사람을 점수로 나누는 기준에도 쉽게 물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전혀 다른 벽을 마주했다.
학창 시절에 외면할 수 있었던 경쟁이 직장에서는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업무는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충족해야 했고 결과물에는 늘 평가가 따랐다.
실수는 곧 무능이 되었고 무능은 누군가에게 피해로 받아들여졌다.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는 건 곧 미움받을 이유가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인정'이라는 단어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일을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인정을 받아야만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잠식됐다.

그 믿음은 소리 없이 스며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짓눌렀다.

쓸모에 집착할수록 더 쓸모없어 보였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입에 붙지 않는 대사를 읊으며
억지로 무대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 기준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힘들게 만들던 이 “유일한 잣대”는
어떤 구조와 문화 속에서만 작동하는,
하나의 허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건 꼭 사이비 종교에서 교주를 신으로 섬기듯,
사회가 만든 하나의 기준을 ‘절대’로 착각한 것이었다.
나도 나만의 동굴 속에서 그림자를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수억 개의 동굴이 있다.
돈, 명예, 종교, 이념, 인정, 쓸모...
사람들은 각자의 동굴에서,
스스로가 만든 혹은 사회가 씌운 개념의 그림자에 따라 살아간다.

그 동굴은 때로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진실을 가리고,
나를 왜곡시키고, 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내가 동굴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그림자가 ‘하나의 개념일 뿐’이라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
그림자에 이름을 붙이고,
그 허상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는 것.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그림자에 속아
스스로를 끊임없이 깎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내 동굴을 처음으로 ‘바깥에서’ 볼 수 있었다.

완벽하게 동굴을 깨고 나올 순 없다.
‘깨달음’조차 또 하나의 동굴일 수 있으니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들여다보는 일이다.

세상이 만든 그림자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 동굴의 입구를 조금씩 밝히기 위해 애쓴다.

그림자를 없앨 수 없다면
적어도 건강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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