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강릉 솔올 미술관에서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을 봤다. 캔버스가 찢겨 있었다. 그 단순한 행위가 어쩐지 충격처럼 다가왔다. 최근에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잭슨 폴록을 만났다. 캔버스 위로 흩뿌려진 물감은 혼란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자유로웠다.
돌이켜보면 내가 감흥을 느낀 건 기술적인 완성 때문이 아니었다. “캔버스도 찢을 수 있구나.” “붓을 안 써도 그림이 되네.” 그런 깨달음 같은 것 때문이었다. 작품 자체보다 그것이 깨뜨린 틀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이다.
물론 두 전시 모두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고전회화처럼 작품은 벽에 걸려 있었고 옆에는 짧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다만 폴록 전시에서는 끝에 짧은 다큐 영상을 상영해 주었다. 창작 과정을 담은 기록이었다. 몇이나 끝까지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상 하나만으로도 작품이 조금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꼭 영상 같은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도 좋겠다. 전시장 동선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의도와 고민을 마주하게 되고, 마지막에 완성된 작품을 만나게 되는 그런 구성이면 어떨까. 과정이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현대미술 전시가 어렵기만 했다.
‘이건 뭘 나타내는 거지?’
‘그냥 말장난 같은데?’
‘전혀 모르겠다.’
그런 생각만 하다가 나온 전시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내 감수성이 부족해서라고 여겼다. 하지만 폴록 전시를 보고 나니 알겠다.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작품을 마주하니, 작품이 아무리 말을 걸어와도 들리지 않았던 거다.
생각해 보면 현대미술의 본질은 완성된 그림에만 있지 않다.
그것이 세상에 던진 질문에 있다.
그 질문이 사라지고 결과만 남으면, 작품은 금세 낯설고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현대미술 전시에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작품을 걸고 캡션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작품이 태어난 순간과 깨진 고정관념들을 전시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식. 관객이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세계에 닿게 되는 전시.
아마 그때쯤이면 현대미술은 덜 난해할 것이다.
적어도 “이건 나도 하겠다”는 말보다는,
“이런 방식도 가능하구나”라는 말이 조금 더 많이 들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