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글쓰기일까 생각일까

by 파르크

손글씨가 점점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적인 행위들이 줄어든다는 익숙한 이야기.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지만, 생각해 보면 늘 그래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전 방식은 미화되고, 새 방식은 단점만 부각된다. 붓에서 펜으로, 펜에서 타이핑으로 이어지는 변화도 그랬다.


붓으로 글을 쓰는 건 단순히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 되돌릴 수 없는 획을 긋는 동안 마음을 다스렸다. 신중함과 품격이 글씨에 스며들었고,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결한 행위였다. 연필과 펜이 보급되면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게 되었다. 자유롭게 종이 위를 누비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필체를 만들었고, 글자마다 흔들리고 잉크가 번지면서 자연스러운 개성이 생겼다. 그 개성은 다른 사람과 공유될 수 있는 인간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자판은 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손은 자판 위만 맴돌았고, 화면에 나타난 글자는 모두 똑같은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던 미세한 떨림, 잉크의 번짐, 속도의 차이가 사라졌다. 그렇게 글은 익명의 기호가 되었다. 한쪽은 손끝에서 살아있는 생명처럼 피어난 개성이었고, 다른 한쪽은 기술과 선택지 안에서 제한된 개성이었다.


사라진 손글씨를 아쉬워하는 동안에도 기술은 타이핑을 넘어 또 다른 세상을 준비 중이다. 뇌파로 생각이 입력되고, 말과 손짓, 환경까지 읽어 글이 자동으로 기록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언어 장벽은 사라지고, 글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될 것이다. 몸을 움직여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글쓰기라는 힘든 노동을 기술에 외주화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글을 쓰는 방식이 대전환을 예고하는 지금, 우리는 글쓰기 행위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들여다봐야 한다. 붓에서 펜, 그리고 타이핑으로 이어지는 동안 변하지 않고 계승된 가치는 '생각을 옮기는 것'이었다. 도구는 변했지만, 그 가치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예상되는 기술 변화는 이 가치마저 흔들려고 한다. 기술이 내 생각을 다듬고 번역하며 기록하는 순간, 어디까지가 내 사고이고 어디부터가 기술의 산물인지 알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맡겨진 생각이 일반화되면 사고의 주체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고 있다. 손글씨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이 글쓰기의 끝은 아니다. 우리는 붓과 펜을 통해 길러냈던 생각을 스스로 다듬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힘을 잃어서는 안 된다. 글쓰기의 본질은 결국 나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정교하게 만드는 일이다. 기술이 형식의 편리함을 가져다주더라도, 이 본질만큼은 누구에게도 위탁할 수 없다. 어쩌면 그 힘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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