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사람 코스프레는 아니고,

'좋은 사람'아니라도 봉사할 수 있습니다.

by 파르크

저는 틈이 생기면 봉사를 합니다.

배식 봉사, 집수리, 도시락 배달, 생태계 교란종 제거, 교육봉사, 유기동물 보호소까지.

그간 다양한 카테고리의 봉사를 해왔습니다.


주말에 봉사를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은주말에 봉사를 해? 와, 대단하다.” 라는 반응과 함께

저를 이타심 가득한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민망해집니다.

사실,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정의감도 이타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린 밤도 없었고요.


시작은 아주 사적인,

조금은 이기적인 이유였죠.



대학생 때였습니다.

안경을 새로 맞추러 ,

안경점 사장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안압이 너무 높은데요?

이거녹내장 위험이 있어요. 병원 가보셔야겠어요.”


녹내장.

그리고 진지한 표정.

조합이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다행히 학교 안에 대학병원이 있었고

학생 할인으로 정밀검사를 받을 있었죠.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의사들이 검사지를 들여다보며 수군대는겁니다.


어떻게나이도 어린데...”

시신경 위축인가?”


저는 검사를 위해 동공 확장 약을 넣은 상태였고,

망막이 공간에 있는 모든 빛을 다 빨아드리는 통에

수용 범위가 초과된 눈시림과 눈물로 이미 심난한 상황이었는데

그 주어없는 의사들의 수근거림까지 얹어지니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나온 종합 소견은

정상 수치보다 높은 안압. 녹내장 가능성 있음. 추적 검사 요망.”


눈이 부시다 못해 부서질 것만 같아

거의 감다시피하고 집으로 오는데

내디딜 때마다, 생각이 덜컥거렸습니다.


하필 나지?

지금부터 점자를 배워야 하나?

나중에 시력을 잃게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렇게 장애라는 단어가 무거운 공포감으로

성큼 제 곁에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들으러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다리를 절면서 걸어가는 여학생이보였습니다.

종종 캠퍼스에서 스치며 봤던 사이였는데,

그날따라 유독 그 분에게 시선이 꽂혔습니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사람도 하루아침에 저렇게 걸까?’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생길 있는 거구나.’


그 때,

비장애인장애인사이의 선이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느꼈습니다.


장애는 멀리 있는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고,

운이 좋아서 비켜갔을 뿐,

얼미든지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뒤바뀔 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다수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에 취해

‘장애’를 남의 일로 치부하고 멀리하고,

무시하기까지 하죠,


그런데 나도 언제나 다수에 속해 있는게 아니라,

얼마든지 소수에 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닿으니

사뭇 흠칫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소수가 있다면,

아직 다수에 속해 있는 지금,

내가 먼저 말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바로 “그래서 그 길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가 나와야 그럴듯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짐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고,

그저 평소 하던 정기 소액기부의 항목을 하나 늘리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죠.


작은 돈을 보내면서도

‘나는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는 왜곡된 선민의식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냈습니다.


그 사이, 다행히도 제 안압은 정상 수치로 돌아왔고,

부끄럽게도 ‘장애’에 대한 저의 관심도 조금씩 희미해졌습니다.


다시 제 마음을 뒤흔든 건, 길 위의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역과 종로인근에서

희망을 놓은 듯 앉아 있는 사람들.

눈을 감은 사람, 벽을 바라보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보는 사람.


그 풍경 속에서 가장 이상했던 건—

같은 공간인데,

그들이 마치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듯한 묘한 이질감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얼마나 큰 상실을 겪었기에 저 자리에 있는 걸까

사회에서 밀려났을 때 절망감은 얼마나 컸을까?’

그날 이후, 저의 시선은 ‘장애’에서 ‘사회적 빈곤’으로 확장됐습니다.

소액의 기부보다도, 그분들께 ‘희망’과 ‘가능성’을 직접 건네고 싶어졌죠.

그래서 봉사를 하는 모임을 찾아보게 됐고,

마침 서울역 쪽방촌 도시락 봉사를 하는 곳을 알게됐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저의 “봉사생활”이 시작됐습니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관심이 있는 곳에 자연스레 발이 향했습니다.

도시락, 배식, 청소, 교육, 유기동물…

카테고리는 제각각이지만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곳에 가볍게 발을 디뎠습니다.


저의 봉사는 이타심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돕겠다는 정의로운 신념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꽤나 이기적인 출발선이었죠.



앞날이 불안해서,

내가 겪을지 모를 고통이 두려워서 였습니다.

그 시작이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봉사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분들을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입니다.

지금은 그분들께 식판을 건네는 일로 제 응원을 표현하지만,

언젠가는 더 나아가 수혜자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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