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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young May 07. 2016

엄마의 밥은 언제나 그립다.



 늦은 봄, 어린 콩잎의 연하고 약간 까끌거리는 물김치가 익거나  아삭이는 여린 열무김치를

한 움큼 밥 위에 올릴라치면  엄마는 어김없이 내 옆에 와 계신다.

 기억의 퍼즐들은 겪어 온 순서가 없어 태곳적 일상들이 오히려 섬광처럼 달려와 젊은 엄마의 수돗가에

 어린 내가 가 서게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들과 긴 전화를 하다 보면 이즈음 주로 하는 이야기가 그 시절 네 집 내 집 옮겨가며 얻어먹던 엄마들의 밥상 이야기다.  

 몸살나는 기미가 오면 항상 짜고 진한 멸치 젓갈에 청양고추 올려 먹던 형제 많던 집의 제 엄마 밥상 귀퉁이에 놓여지던 그것이 당긴다는 미국 생활 30년의 내 친구, 그러고 보면 나도 좀 길게 아프고 나서 무엇이 먹고 싶냐는 질문에는 난데없는 멍게꼭지의 짭조름한 맛을 습관처럼 떠올리곤 했었다.


 해안도시에서 자란 내게 붉은 멍게 속 알맹이야  흔한 식재료인데 싱싱한 제철 멍게를 썰어

 주황빛 알갱이를 끄집어내던 엄마의 손끝에서

 얻어먹던 뚜껑 연 그 꼭지 맛이 그리운 거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지치고 힘들 때는

 내 엄마의 깊었던 사랑으로 되돌아가 위로받고

 싶은 건지...

  입에 넣어 굴려 보던 우렁쉥이 껍질의 짭조름한  물기는 허약한 유년시절의 나를 케어하던

 엄마의  마음으로 오버랩된다.

  나는 병치레를 잘 하던 그래서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한 딸이었다.  

 


   어른되어 오랜 출근에도 병 따위로는 아이들의  수업 손실을 절대 내지 않던 철인의 직장생활도,

 엄마를 닮아 자식의 밥 거리에도 소홀하지  않는 날들도 접어야 할 무렵이다.

  경부선 버스를 타고 올라와 기사 아저씨로부터 넘겨지던 그녀의 제철 김치나 계절 반찬들이

  어느 날부턴가 간이 흐트러져 갔을 때

   '먹고 싶던 석박지가 왜 짜게 됐냐'고 투덜대는 전화나 하던 나는 '엄마라는 이는 영원히 늙지 않는

    자식의 피드백'이라 여긴 게지.  

  혼자 하는 식사가 늘어나고 외국여행에 자주 노출된  끼니는 차츰 간소화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바쁜 출근길에도 전날 준비해 둔  제대로의 깊은 시락국에 밥 한 공기 후루룩  말던 것이

 이제 출근 길 위에서도 해결되는 커피와 마른 빵 한 조각으로 옮겨 갔다.

  아무리 큰 커피 잔에도 늘상 채워지지 않는 인생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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