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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young Oct 22. 2021

어쩌다  윤 스테이

  지리산, 쌍산재, 임지호 셰프




 머리로 생각하는 만큼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게으름 체질이라 자연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 건강한 여행자는 되지 못하고

나의  대부분 여행들이 낯선 도시의 방관자가

되어 느긋한 아침과 깊고 늦은 밤을 헤매야 하는 도시형 플랜이 많았다.

그것 또한 카페인 중독처럼 매력적인 것이어서

커피를 앞에 한 오슬로의 외로운 아침처럼

늘 그리운 것들이다.

 그런데 무더웠던 지난 7월

잠시 일하던 다문화 학교 교사들의 지리산 탐방

연수에 동참했었다.

 옆 계곡에서 밤 내 잠자리를 울리는 산 물소리를 들어야 했던 에서의 1박.

저절로 눈이 떠지던 그 새벽 공기 속에

홀린 듯이 나가 누군가가 건네 준 커피 한 잔씩을 받아 들고 계곡가에 멍 때리고 있었다.

'아! 자연 속이란 이런 것이구나' 했다.

 여행 후에도 그 물소리는 생생했고

여름날 지리한 일상을 이겨내는 역할을

해주었다.



 섬진강에서 건진 참게탕에다 좋은 산나물들로 차려진 아침 식사를 하고

지리산이라면 그저 산수유, 벚꽃 이런 꽃 무더기 쏟아내는 마을 풍경쯤으로 TV에 접하던 나는

운동화를 구겨신은 채(뒤꿈치가 까져) 뱀사골 긴 계곡을 줄창 걷고 천년송이 유명한 와운마을과

방랑식객 임지호님의 '밥 정' 다큐 촬영지인 단천마을 오두막을 찾는 강행군도 해야 했다. 


 이제는 지리산의 향기가 되어버린 임지호 셰프,  생의 소중한 3분 어머니를 위해 3일 밤낮을 108가지

제사음식을 툇마루에 장만해 놓고 지쳐 잠깐 잠든 장면은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이 세상 온갖 자연을 식재료로 여기던 자연요리연구가로서의 재능과 사람을 향한 순수한 감성을

 눈여겨본 이들에겐 그의 이른 죽음은 참 안타깝고 아까운 일이다.  




  이튿날은 구례의 오래된 한옥 쌍산재, 운조루, 곡전재를 찾았다.

베트남 교사들이 몇 있어 우리 주거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는데 우리가 더 즐거워했다.

 폭염 속에 처음 들어 선 쌍산재는 요즘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과 맞물려

지리산의 핫 플레이스가 되어있는 곳, 사실 '윤 스테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많이 알려졌다는데

나는 여행 후에야 찾아서 시청했다.

 아무려나 그곳 사랑채에 웰컴 티 한 잔을 받고 앉으니 어찌나 눈앞에 놓인 작은 정원이 마음에 들던지

이런 별채 하나 가지면 소원이 없겠다 싶더라.


 나이 탓인 듯 어릴 적 기억 속에 있도라지, 봉선화, 감꽃 같은 꽃, 나무들이 요즘 반가워져

우연히 시골집 정원에서라도  보게 되면

'어! 여기 어딘가에 다들 살아 있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 같은 걸 느낀다.

장미와 후리지아 아이리스에 한동안 바람났던 시골 여자처럼...

 능소화가 흐드러진 마당을 지닌 사랑채는 넓은 쌍산재 고택의 입구 한 켠일 뿐인데

나는 그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퓨전식 별채에 빠져 더 일어서고 싶지도 않았다.

더위 속에 거친 멍석 촉감의 대청마루 카펫이 동료와 나를 붙잡고 있었지만...



연륜이 오래된 고택의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노라면 진품을 찾아가는 희열같은 것이 있다.

 언젠가 겨울이 오면 윤 스테이의 숙박객들처럼 이곳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녹이면서

살얼음 낀 식혜 한 국자쯤 나누는 여행기록도 좋을 듯싶다.

사실 쌍산재는 운조루, 곡전재보다 상술적으로 다듬어져 있다. 고택 그대로의 운치를 가진 곳은

후자들 쪽이다. 그러나 빈틈없이 조화롭고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어 그 퓨전식 아름다움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

 지리산 채취의 오미차로 담근 차에 말린 레몬 한 조각을 블랜딩 한 웰컴 티처럼 성공적이다,

 

 운조루의 기억은 마당에 흩어져 무성하던 봉선화 꽃잎들(아까웠다)과 벽에 함부로 붙어 있던 많은

민화들이 떠오르는데 다시 찬찬히 보고 싶은 곳. 곡전재는 지쳐서 아예 다음을 기약하고 말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잠시 들른 남원 근처 서도역, 1930년대 건축물이라 개화기 일본 느낌이 많이 났다.

언젠가 봤던 드라마 '미스터 샤인' 대본이 장식되어 있다. 촬영지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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