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로움과 무력감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어느 병원에서였다. 의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받았고 최대한 정상적으로 답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에는 “네.”라고 대답했고 “근래 걱정되는 것이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답을 하는 동안 진료실은 정말로 조용했다. 그냥 모든 것이 무미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부조화가 심하네요. 우울 증상이 심해서 위험하니 약을 처방해 줄게요.”
위험하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잠시 의문스러웠지만 되물어 볼 의욕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어쨌든 외로움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으므로 홀가분하기도 했다. 내 마음은 그저 홀로 동떨어진 섬에 있는 것 같았다. 병원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괜찮았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 눈이 부셨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냥 조금 걷고 싶었기 때문에 큰길까지 걸어 나왔다. 약국에 들어가 항우울제와 진정제가 적힌 처방전을 내밀자 약사는 한눈으로 쓰윽 훑고서는 곧 약을 내어주었다.
오래된 찻잔이 새롭게 사용되었다.
손바닥 위에 약을 털어놓으니 실감이 된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이제 고작 23살이다. 그런데 왜 어째서 모든 것이 끝나버린 걸까?
나는 어딘가 망가져있다. 대체 언제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걸까? 어디가 잘못된 걸까? 고칠 수는 있는 걸까? 태어날 때부터 불량이었을까? 감이 잡히질 않는다.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을 것만 같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중독되어만 가는 이유는 날 때부터 어딘가 부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부품이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찾아 헤매지만 누구도 찾아줄 수 없기 때문에 점점 미쳐가는 것이 아닐까?
꿀꺽.
약을 삼키기 전에는 분명 비참한 심정이었는데 단 30분이 지나니 기분이 극적으로 나아졌다.
우울과 관련된 극적인 경험.
방금 전까지 ‘죽는 게 낫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당연히 살아야지.’라며 손바닥 뒤집듯 기분이 달라졌다.기분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져서 내가 그동안 엄살을 부렸던 것일까 혼란스럽기도 했다. 어리광 부리려고 우울증에 걸릴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말짱해질 수가 있을까?
그러나 그 이유는 내 약봉지에 섞여 있던 항진 정제의 효과일 뿐이었다. 내 안의 한껏 높아져 있던 ‘무언가’가 진정된 것이다. 그리고 네 시간쯤 지나자 다시 불안해졌고 비참해졌다.
오래되어서 아름다운.
우울증은 흔한 정신질환이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니 가볍게 생각해도 좋다고 단언할 것 까진 없겠지만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서 무리하게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
우울증은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다. 죽음, 실직, 경제적 이유처럼 현실적 상황에서 발생되기도 하지만 걱정, 시기, 타인과의 비교 등 상상 속의 환경에 의해서도 발생된다. 유전적인 경우도 있다. 어쨌든 셀 수 없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된다. 그러니 무리하게 원인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 없다. 그저 감기를 앓듯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우울증의 대표 초기 증상은 생활에 의욕과 흥미가 떨어진다. 원인 모를 통증이나 불면증 혹은 수면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져도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외로움도 우울증의 원인이자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약을 먹고서야 어렴풋이 낡겠더군요. 외롭지 않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외로웠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것인지 우울증이라서 외로움을 느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병의 원인이자 결과가 외로움과 무기력이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