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번째, 우리는 너무나 고독해서 죽어가고 있다.

by 송수연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북적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고독해서 죽어가고 있다.
- 슈 바이처



공식적으로 우울한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주야장천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삼일에 한 번은 괜찮았다. 물론 약을 먹지 않으면 곧 나빠지긴 했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심심할 때 적당히 놀아줄 친구들도 있었고 나를 끔찍이 여겨줄 연인도 있었기 때문에.


괜히 고독해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살짝 시니컬한 말투를 가지고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주인공처럼 머무르기도 했다.


이제 와서 말인데, 군중 속의 외로움은 약도 없다. 외로움을 입 밖으로 꺼내봤자 배가 불렀다며 야유만 받을 뿐, 일말의 동정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위로받으려고 일부러 외로운 척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괜찮아졌다가 다음 날엔 어김없이 슬퍼졌다.



Photo by Alina Grubnyak on Unsplash



누군가는 고흐의 정신병의 이유를 <극심한 외로움과 무력감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정신병이 극심한 외로움을 만들어냈다는 쪽이랄까!


원병묵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고흐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감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원병묵(2018). “고흐, 백색의 열정과 절망”, 한겨레.



사연은 이렇다.

고흐의 독특한 화풍을 대표하는 크롬 옐로 물감이다. 당시 물감에는 납이 들어있었다. 곧 고흐의 비극적 죽음의 원인은 외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납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때문이 아니었을까?


<컬러 인문학>의 저자 게빈 에번스도 고흐가 튜브에서 노란 물감을 짜서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는 증거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 공격적 행동, 불면증, 심신 미약 등 심리적 문제를 촉발했고 나아가 자살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내 외로움과 무력감도 우울증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내게는 그토록 외로 워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럭저럭 잘 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죽을 듯이 엄살을 떨면서 관심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음을 결심하다>의 베로니카는 1997년 11월 21일 드디어 목숨을 끊을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 들어있는 수녀원의 방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난방을 끈 다음 이를 닦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그만두려 했으므로 알약을 으깨어 먹는 대신 통째로 삼키고 있었지만 삼키면서 결심은 확고해졌고 5분 안에 수면제 네 통을 비웠다.


그녀는 왜 죽음을 결심했을까?
왜 그토록 확고했을까?


죽음의 이유가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내용은 이렇다.

앞으로의 삶이 너무 뻔했기 때문에.


가족의 애정이 부족해서도 금전적 문제가 있어서도 불치병에 걸려서도 아니다. 다만 명확한 것은 젊음이 떠나간다는 사실. 젊음이 가면 그다음엔 내리막이다.


노쇠와 질병들, 자신이 세상에서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테다. 그녀의 죽음은 뻔한 삶 속에서의 더 이상 불빛을 밝히기 어려웠다.



그녀의 삶에서
열정이라는 불꽃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녀는 죽음을 결심했고,
확고한 태도로 수면제를 비워낸 것이다.



샤르트르는 실존의 고뇌 속에서 ‘현실’은 끔찍한 감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베로니카의 죽음은 마침내 얻은 자유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렵고 부러웠다.





[지난 이야기]
3번째, 외로움과 무기력의 정체

keyword
작가의 이전글3번째, 외로움과 무기력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