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세차게 헤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녀석.
그렇게 애써봤자 더 신선해 보일 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함께 어울려야 한다? 천부당 만부당 지당하신 말씀이다. 혼자 있을 시간도 필요하다?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울증 환자에게 저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함께 있는 것도 혼자 있는 것도 괴롭고 지친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 기쁘다가도 하염없이 침울해지곤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모두 다 변할 텐데…….
너도 나도 변해버릴껄.
상대의 손을 탁 쳐버리고는 은근히 다시 잡아주길 바라는 요상한 심리였다. 꿀밤 때리고 쓰다듬어 주고는 또 꿀밤 때리는 꼴이다. 이제 와서 백번 반성해도 부족하지만 어쨌든 당시 나는 자주 어린아이같이 굴었다.
나의 경우는 외롭다가도 대책 없이 시니컬해지곤 했다.
뭐, 그까짓 거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이런 종류의 말을 자주 했다.
이제 와 밝히지만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말은 조금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가 내게 중요해지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특히 가장 괴로웠던 점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다는 데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점점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초조했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는 싶었기 때문에 뭐든 열심히는 했다. 그러나 발버둥을 쳐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늪처럼. 끊임 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
자주 꿈을 꿨다. 하늘을 나는 꿈, 다음날에는 땅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꿈. 아마도 내가 서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은 망했고 대학은 중퇴했으며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관계도, 연애도 엉망이었다. 그저 어디론가 쓸려가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많이 취했고, 실컷 웃기도 했다. 어느 날엔 호기롭게 약을 끊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약기운이 떨어져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 그제야 허겁지겁 자전거를 타고 약을 처방해 줄 병원을 찾아다녔다.
이 물고기 제가 사갈게요.
어느 날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 가는 길, 횟집 수조의 어느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다.
횟집의 물고기는 물고기라고 부르기 어색한 부분이 있다. 생선 혹은 횟감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까지 든다. 어쨌든 횟집 물고기의 운명은 꽤 정해져버린 느낌이다.
그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세차게 헤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리고 싶었다. 바보 같은 녀석. 그렇게 애써봤자 더 신선해 보일 뿐이다.
횟집을 지나 집까지 걷는 동안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가난했고 어렸다. 수조 안에서 열심히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나도 그저 신선해보이는 수조의 물고기가 아닐까? 구원해줄 수 없는 수조 속에서 발버둥 쳐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닐까?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호기롭게 횟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 “이 물고기 제가 데려갈게요!”라며 구조해 올 용기 조차도 없었다.
상상했다. 열심히 헤엄치는 저 물고기를 집으로 데려가는 상상. 그리고 바다에 풀어주는 상상. 그러나 정말 운이 좋아서 집에 데리고 온다 한들 우리 집 욕조에 풀어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정도 밖에 할 수 없는 나의 하찮음에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알아야 했다. 이토록 극심한 외로움과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어찌할 도리도 없이 끊임없이 가라앉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이 아주 멀리 있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 의식 너머 어딘가에서 발생된 사건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탐정이 되기로 한것이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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