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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형의 불행은 분명 끝날 거야

by 송수연


‘음악을 듣는 사람은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서 고독을 느낀다.’

-로버트 브라우닝



영국의 시인 로버트 드라우닝은 당대 최고의 낭만주의자였다. 그의 드라마틱한 독백(monologue)은 영국 시문학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에 목숨을 건 그의 삶은 예술 작품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고통을 수반하듯 ‘고독’이라는 단어는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로맨틱한 예술가와 고독은 잘 어울린다. 매력적이기 까지 하다. 그러나 그 무엇도 아니었던 내게 ‘고독’은 어울리지 않았다..... 라고 까지 단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묘하게 이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당시 내 상태와 흡사했을까? 외로움이다. 그것도 찌질한 외로움.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



두 단어는 모두 ‘혼자’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맥락상 다르게 쓰인다. 우선 뉘앙스가 다르다. ‘고독’은 한껏 멋 부린 사자나 표범 같은 느낌이다. 너무나 일찍 세상에 태어나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천재 예술가들에게나 어울리는 단어랄까! 반면 외로움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존재가 목적도 없이 쓸쓸해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feat. 외로워 죽겠다!)



Photo by Jyotirmoy Gupta on Unsplash



나는 외로웠고 무기력했다.


제일 큰 문제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시도 때도 없이 축 처지곤 했다는 점이다. 물론 감정의 굴곡 없이 평범하게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희망 같은 것이 샘솟기도 했다. ‘앞으로도 매일 이러했으면…….’ 그러나 바람일 뿐,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멍한 날이 더 많았다. 그런 날은 억지로 힘을 내보려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어보기도 했다. 팔과 다리를 허공에 허우적대면서. 그럴수록 축축 처지는 것이 마치 젖은 휴지가 된 기분이었다.



외관상 좋지 않은 젖은 휴지.

조금만 건드려도 가차 없이 찢어지는 젖은 휴지.

온전히 회수하려면 휴지가 말라붙길 기다려야 하고 그마저도 깔끔하지 않은 젖은 휴지.



젖은 휴지를 한 번이라도 말려 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바짝 말려도 영 사용하고 싶은 맛이 나질 않는다. 그것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로 뭉쳐서 갖다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갖다 버릴 수는 없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턱 늘어뜨리고 마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영화 <미녀 삼총사>에 나오는 주인공 나탈리는 바짝 마른 휴지 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한방에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추며 이불을 정리한다. 나는 그런 점 때문에 오랫동안 그녀를 동경했다. 대체 어떻게 아침을 저렇게 맞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침이 기쁘지 않았다. 새로운 아침이 부담스러웠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쁘게 웃을 수 있을 만큼 호방한 사람도 아니다. 나란 사람은 그저 현재에 갇혀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하릴없이 서성이는 루저나 다름없었다.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오늘을 왜 그따위로 대충 보내느냐고 타박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왜 이럴까?’라고 자신을 원망하며 조금 더 젖어들 뿐이다.


젖어들건 말건 태양은 눈치도 없이 365일, 아침마다 어김없이 창문을 두드려온다. 그놈은 휴가도 없나. 진실로 부지런한 녀석이다. 밥을 먹기 시작하면 이윽고 눈물이 났다. 살겠다고 먹는 모습이 가엾고 비참했기 때문에....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Photo by Dimitar Kazakov on Unsplash




프랑스의 시인 아나톨 프랑스는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가장 맛있는 청춘을 가장 마지막에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테다. 그의 말처럼 청춘은 바삭하고 달콤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가여운 나의 청춘은 무력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해서 외면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그도 끔찍한 외로움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흐의 동생 테오는 편지에 “형의 불행은 분명 끝날 거야.”라고 진심 어린 응원의 글을 적어 보냈다. 그는 오랜 시간 정신적, 경제적으로 형을 지원하고 있었다. 고흐는 편지에 고백한다.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무력감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돌파구를 만들어줄 유일한 존재이자 고흐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폴 고갱과 크게 다툰 날, 고갱은 짐을 싸서 타히티로 떠나가 버린다. 그날 밤 고흐는 자신의 소중한 귀를 한 움큼 잘라내 버렸다. 자신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낀 순간부터 그는 서서히 젖어들었던 것이 아닐까?







다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개설했습니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자신을 이끄는 방법을 함께 나누실 분들을 모십니다.


펀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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