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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무력감은 어디에서 왔는가?

by 송수연


단서 1. 인정 욕구_욕구는 그 자체로 본능적이다.




‘욕구는 그 자체로 본능적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욕구로 무장된다. ‘

-매슬로우







탐정이 되어 제일 먼저 했던 일은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아동 심리학을 읽는 일이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어딘가에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어느 부분의 나사가 잘못 끼워졌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곳의 나사를 풀어 다시 조여야 했다.


그러다가 매슬로우 박사의 욕구 5단계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다.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1단계 욕구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를 먼저 채우고자 하고, 그 욕구를 채우고 나면 2단계 안전 욕구(safety needs)를 채우고자 한다. 안전 욕구가 만족되면 3단계 사랑과 소속의 욕구 (love&belonging)를, 더 나아가 4단계와 5단계인 존경 욕구(esteem)와 자아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를 차례대로 채우려 한다.


Photo by Nick Fewings on Unsplash



매슬로우 박사는 “인간의 욕구는 본능적이기 때문에 태어남과 동시에 욕구로 무장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원하고 완전한 만족 상태에 머물 수 없다”라고 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끊임없이 채우고 싶고 실패하면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문제의 원인이 내가 불량품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매슬로우의 주장은 학자들 사이에서 비판도 있었다. 단계 구분이 모호하고 과학적 검증이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하위 단계가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상위 단계인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 자신은 굶으면서 남을 먹이려고 하는 사람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터로 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심리학자인 알더퍼는 매슬로우의 5단계 이론을 존재 욕구(Existence needs), 관계 욕구(Relatedness needs), 성장 욕구(Grow needs) 세 가지로 단순화한 ERG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슬로우의 이론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대중 앞에 꺼내놓았기에 큰 의미가 있다. 내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쓸쓸한 욕망이 내가 무리한 욕심을 부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조금이나마 해방되었다.

나의 바람은 정상적이며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야.



‘사랑과 소속의 욕구를 충분히 채우지 못하면 외로워진다.’라는 표현은 조심스럽다. 생각은 오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내가 ‘느끼기 때문에’ 외롭다는 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상대에게 “왜 당신은 나를 충분히 사랑해 주지 않나요?”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 알고 있다. 사랑을 하는 주체가 상대이기 때문에 내가 우길 수 없다. ‘충분함’의 정도도 구체적이지 않다.


다만 ‘내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로 생각을 전환시켜야 한다. 문제의 핵심을 바로잡을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탐색하다 보면 고질적 외로움과 무기력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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