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의 쓸모

열심히 일해야 쓸모 있나요 뭐?

by 송수연

어릴 적 한 살 어린 동생 덕에 강제로 장녀가 되었다.


막내는 존재만으로도 너어무- 예쁘다는데 장녀는 뭔가 장한 짓을 해야 예쁨 받는다.

동생을 돌본다던지, 숙제를 열심히 한다던지, 엄마 말을 잘 듣는다던지.... 더 나아가서 음식 투정을 안 해도 좋고, 갖고 싶은 것이 없으면 더 좋다. 키우기 쉬우니까. 그런 아이였다 내가.


다양한 방식으로 예쁜 짓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한) 꼬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지경이다. 여전히 숙제를 열심히 하고 음식 투정을 안 하고 갖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엄마 말도 잘 듣고(?)장한 짓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나의 모든 동기는 외부에서 온다. 1등으로 일을 끝마친다던지,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성적이 좋다던지... 나 같은 사람들은 게임을 해도 show me the money 같은 치트키를 안치고는 못베긴다. 도무지 게임이 진행되지 않기때문에... 뭐든 개 떼처럼 만들어서 마구 쏟아 부어야 한다. 전략 같은 건 없다. 이기면 그만이지.


그러나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젠장.


이기면 뭐해?

장한 짓을 하면 뭐하냐고. 다음날 그짓을 또 해야 하는데?


그저 막내여서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던 동생은 치트키 같은 건 쓰지 않는다. 게임 속 유닛 한 마리를 성실히 치료해서 다시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오 마이 갓. 내적 동기로 움직이는 인간이 진짜로 있다는 사실을.... 경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 이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


존재만으로도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닌가!


오늘처럼 여기저기 쏘다니며(?) 의미 있는 일을 한 날엔 왠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실은 가만히 있어도 쓸모 있는 사람인데. 우리 엄마한테 물어보면 단박에 그렇다고 하실 텐데.


특별히 잘나지 않아도 뭐, 상관없어. 하고 툴툴 털듯이 되면 좋겠지만... 여전히 쓸모에 집착하는 나라도 뭐. 괜찮지 뭐.


뭐, 그렇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장인의 가슴통증과 아울렛